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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은 아픈 상처 고백.. 김해숙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선필,이정민 입력 2018.06.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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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허스토리> 참여하며 우울증상까지.. "말할 수 없는 감동 느꼈다"

[오마이뉴스 글:이선필, 사진:이정민]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해숙. ⓒ이정민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해숙.
ⓒ 이정민
"과거 얘기가 아닌 그 아픔을 겪은 그 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배우 김해숙이 일본군 성노예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에 참여한 이유는 분명했다. 1992년부터 6년 간 총 23회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한 '관부재판'을 그린 이 영화엔 그의 말대로 고통과 회한의 세월을 견딘 할머니들의 뜨거운 모습이 담겼다. 

그중 김해숙이 맡은 인물은 성노예로 끌려간 과거를 가슴 깊이 묻고 있다가 점차 세상에 진실을 알리게 되는 배정길이다. 고통의 세월을 지나 아들 하나를 두고 극중 여성사업가 문정숙(김희애)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던 그는 영화 안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겨우 가슴에 묻었는데 그 상처를 자신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울릴 만했다. 

"연기할수록 무서웠다" 

앞서 말한 참여 이유, 그러니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는 것에 더해 김해숙은 "저도 몰랐던 관부재판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보탰다. 정리하면 어떤 사명감과 배우 개인이 품고 있던 도전의식의 결합일 것이다.  

"배우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이 영화의 좋은 뜻을 알리고 싶었다. 그 재판을 겪으신 분들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위안부 피해자 분들은 살아계신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를 알리며 우리가 비록 서로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이렇게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실제 관부재판에 참여한 인원은 위안부 피해자 3명과 정신대 근로자 7명이다. 이중 김해숙은 이순덕, 하순녀, 박두리 선생 중 한 인물을 모델로 했을 법했다. 김해숙은 고개를 저었다. "배정길의 실제모델이 누군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며 그는 "그걸 떠올리면 김해숙 개인의 생각까지 들어갈 것 같아서 (시나리오에 표현된) 배정길에만 집중했다"고 답했다.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주)NEW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 (주)NEW
"예수정, 문숙, 이용녀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감독님이 워낙 자료조사를 잘했고, 오래 준비하셔서 거기에 충실하려 했다. 배우들끼리도 따로 얘기할 정신이 없었다. 각자 맡은 인물들의 감정의 끝을 놓지 않으려 하면서 서로 말없이 손을 잡아주곤 했다. '연기하면서 너무 힘들지?' 손짓 하나로 마음이 통하곤 했다. 특히 재판신이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자. 누구 하나라도 쓰러지지 말자는 각오였다."

평균 나이 환갑을 넘긴 네 배우들은 잘 버텨냈지만 정작 연출자인 민규동 감독이 마지막 촬영 당시 쓰러졌다는 후문. "덕분에 배우들이 좀 쉴 수 있었다"면서도 김해숙은 "오전부터 아프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고 감독의 노고를 언급했다. 

"실제로 그 분들의 아픔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다만 법정 장면에선 다른 생각이 들더라. 그 아픔과 모욕을 겪어낸 분들이기에 오히려 일본 법정에선 더 강해졌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스물 세 번의 재판을 견디셨겠지.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왔다'를 당당히 말해야 했기에 나 역시 연기하면서 울지 않으려 엄청 노력했다. 

그간 한 많은 엄마 역도 참 많이 했다. 보통은 시나리오를 받으면 '이 캐릭터는 이럴 것이다'하고 상상이 되는데 <허스토리>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아픔을 알 수가 없더라. 겁이 나고 너무 무서웠다. 제가 폐를 끼치면 어떡하나 그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힘이 들더라." 

고통 속에서 피어난 감동

ⓒ이정민
김해숙의 말은 지난 언론 시사회 때 다른 배우들이 고백했던 심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20년은 훌쩍 넘긴 경력의 배우들이 한 목소리로 "고통의 깊이를 알 수 없어 모든 걸 내려놓고 연기하려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중압감은 일종의 책임감으로 다가왔을 터. 그래서 그 마지막 재판 신을 마쳤을 때의 김해숙의 심정은 그만큼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재판을 받는 걸 끝으로 촬영이 마무리 되는 일정이었다. 배우들 모두 탈진 상태였지. 동시에 어떤 감동으로 다가왔다. 예수정씨 역시 영화를 보신 후 가슴이 벅차서 말을 못하시지 않았나. 솔직히 영화를 보는 게 두려웠다. 시사회 때도 몰래 혼자 확인하고 싶더라. 

이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분명 작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다. 확실히 몸과 마음이 지쳐있더라. 조금 일을 쉴까 했는데 그러면 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차기작 드라마를 한 것이다. 근데 그걸 끝내고도 계속 우울감이 있으니 병원에선 약을 권하기도 했다. 일단 약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저만의 여행을 떠났는데 그 이후로 괜찮아졌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스스로를 두고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도 분명 <허스토리>는 쉼표를 찍게 한 작품이 된 것.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왜 연기를 하는지 돌아보고 다시금 본인의 의지와 열정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여행을 마친 뒤 그는 본래의 열정적인 '국민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누군가는 지겹다 하실 수도 있지만 전 작품 욕심이 많다.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는데 <해바라기> <박쥐> 등을 하면서 그 생각을 했다. 세상에 모정은 하나라도 엄마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 말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한다. 다음엔 삭발을 할까? 생각도 한다니까(웃음). 

엄마는 지고지순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엄마는 상징이 아니다. 그간 정말 다양한 엄마를 제가 하지 않았나. 딸의 애인을 뺏는 엄마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제가 '엄마도 하나의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많은 엄마의 모습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이정민

어떤 설렘

환갑을 넘겼다는 사실을 말하니 "마흔 아니었나요?"라고 답하며 그는 크게 웃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언뜻 방향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청춘들이 참고할 지점이다. "인생을 많이 살았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워 하면서 김해숙은 "결국 본인 스스로를 이겨야 한다"고 운을 뗐다.

"아마 말로는 알아도 체감은 못할 수 있는데 인생은 정말 마라톤 같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적어도 5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뭐든 본인에게 달려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제 5년 뒤? 아마 그때도 현장에 있을 것이다. 언제든 현역으로 활동하고픈 사람이니 말이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보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면 설렌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분명 작품 수가 많아질수록 무서운 것도 있다. 하지만 일을 사랑하는 열정이 그걸 버티게 해준다. 현장에선 배우로, 집에선 배우라는 걸 잊고 철저하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려 한다. 결국 마음가짐 아닌가. 나이 들면서 나를 내려놓을 때 행복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자신을 낙천적이라 표현했지만 다른 말로 바꾸면 김해숙은 보다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허스토리>를 통해 중년 이후 여성 배우들이 대거 관객 앞에 등장한 현상에 대해서도 "가까운 시일 내에 여배우들의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은 변하고 있고, 훌륭한 여배우들이 많은 만큼 분명 바뀌어 갈 것"이라 전망했다. 동시에 그는 "여배우, 남배우가 아닌 그저 다들 배우일 뿐"이라며 "자신과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준비하는 배우가 되어야 겠다"고 한 번 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확인했다.
  
ⓒ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