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인에게 칼 던지는 '기름진 멜로', 제정신입니까
[오마이뉴스 이유정 기자]
5월 초에 첫 방영한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는 동네 중국집 '배고픈 후라이팬'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로맨스코미디물이다. 서숙향 작가의 전작 <파스타>에 이은 또 하나의 요리 드라마이자 <질투의 화신>에 이은 색다른 삼각관계 구도에 이준호, 정려원, 장혁 등 이른 바 믿고 보는 배우들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지난 21일 방송된 9화와 10화는 그 기대가 한순간에 실망으로 돌아서는 지점이었다. 빈약한 스토리라인과 다소 산만한 전개는 아직 초반이라는 점과 작가 특유의 코드를 감안해 그럭저럭 이해한다쳐도, 이와 별개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불편한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전 부인을 향해 칼 던지는 남주, 이건 범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전 부인이 자신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기를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하면서 호텔로 찾아가 전 부인과 사장이 누워있는 침대 위로 중식도를 던진다. 물론, 칼을 던지기 전에 이렇게 말하기는 한다. "다쳐, 꼼짝마." 죽이거나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이 장면은 우리가 뉴스에서도 쉽게 접하는 형태의 명백한 '데이트폭력'이다. 이유와 의도가 어찌됐든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칼이 날아들었고, 사장의 말처럼 이건 '살인미수'다. 인물의 극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설정이 꼭 이런 폭력적인 방식이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극의 흐름상 바람을 피운 두 사람에 대해 서풍이 피해자로 묘사되는 상황에서 이 장면은 오히려 서풍의 행동을 정당화 할 위험도 있다.
잠자리 거절에 노래방도우미 찾는 남자
서풍이 들어간 동네 중국집은 조폭 두목 출신의 두칠성과 그의 후배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두칠성의 오른팔인 오맹달은 첫눈에 반한 중국집 새 여직원에게 잠자리를 거절당하고, 형님으로 모시는 두칠성도 짝사랑 상대에게 외면받는 걸 목격하고는 혼자 노래방을 찾는다.
문제는 이 장면에서 젊은 노래방도우미 여성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오맹달은 한두 번 와본게 아닌 듯 해당 여성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른다. 그리고는 나훈아의 '사내'를 열창하면서 하는 다음 대사가 압권이다. "오빠는 진정 사내다."
여자에게 거절당한 남자의 씁쓸함은 꼭 '노래방도우미'를 옆에 끼고 노래를 불러야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게 현실이라 변명하기엔 "요즘" 드라마에서 참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이 불필요한 장면이 무려 두 번에 걸쳐 꽤 비중있게 다뤄졌다는거다.
시대에 역행하는 드라마, 언제까지 봐야 하나
이게 끝이 아니다. 조폭 출신 후배들이 두칠성에게 연애 좀 하랍시고 "여자랑 자본 적은 시골 하늘의 별 같이 많아도, 여자랑 사랑해 본 적은 서울 하늘에 별 찾기"라 하지 않았냐면서 덧붙이는 마지막 말은 이렇다. "별은 (역시) 시골 하늘의 별이죠."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놀랍게도 이 모든 게 무려 한 시간짜리 2회분 방송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3회에서는 미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한 대사도 있었다. 세탁소 주인이 옷을 거울에 대 보는 여성에게 "예쁘다"고 하자, 여성은 "그딴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며, "요즘 미투인지 뭔지 그것때매 한국이 난리가 났으니 사장님도 조심하라"고 한다. 여성들과 말도 섞지 않겠다는 펜스룰이 오히려 대두되는 요즘 상황에서, 미투의 본질을 이해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던 대사다.
그래서 <기름진 멜로>는 더 불편하게 다가온다. '로코믹 주방활극'이라는 소개대로 가볍게 볼 수 있는 로코를 기대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 거슬리는 대사와 장면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귀를 닫은 채 지금같은 수준의 젠더 감수성으로 계속 밀고 간다면, 이 드라마는 주 시청자층인 '젊은 여성'들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유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25쌍의 강제 합동결혼식.. 박정희의 불온한 '생각'
- 의심받았던 손석희의 '다짐'.. 고개숙인 모습조차 달랐다
-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몰라.. 1961년 벌어진 충격 실화
- 딸의 얼굴을 핥는 아빠, <안녕하세요>는 '또' 웃어넘겼다
- 디카프리오가 말한다, '지구온난화도 정치의 문제'라고
- "멕시코인-친구, 누구 살릴래?" 호러영화의 '뼈 있는 질문'
- 프랑스판 <리틀 포레스트>, 와인에 비유된 삼 남매의 결합
- "깜짝 놀랄 것".. 판사가 대본 쓴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 조진웅조차 갸우뚱해 한 스토리, 중요한 걸 빠뜨린 '독전'
- 아이 옆에 두고 성매매 하는 엄마, 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