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전 연인에게 칼 던지는 '기름진 멜로', 제정신입니까

이유정 입력 2018.05.23. 11:18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주장] '도우미' 끼고 노래도.. SBS 드라마 <기름진 멜로> 의 불편한 장면들

[오마이뉴스 이유정 기자]

5월 초에 첫 방영한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는 동네 중국집 '배고픈 후라이팬'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로맨스코미디물이다. 서숙향 작가의 전작 <파스타>에 이은 또 하나의 요리 드라마이자 <질투의 화신>에 이은 색다른 삼각관계 구도에 이준호, 정려원, 장혁 등 이른 바 믿고 보는 배우들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지난 21일 방송된 9화와 10화는 그 기대가 한순간에 실망으로 돌아서는 지점이었다. 빈약한 스토리라인과 다소 산만한 전개는 아직 초반이라는 점과 작가 특유의 코드를 감안해 그럭저럭 이해한다쳐도, 이와 별개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불편한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전 부인을 향해 칼 던지는 남주, 이건 범죄다   

드라마 <기름진 멜로> 중 한 장면 ⓒSBS
으리으리한 호텔 중식당에서 스타셰프로 잘 나가던 주인공 서풍은 오랫동안 만나 결혼까지 한 상대가 호텔 사장과 바람을 피고, 자신은 지방으로 인사발령이 나자 맞은편 동네 중국집에서 복수를 준비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전 부인이 자신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기를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하면서 호텔로 찾아가 전 부인과 사장이 누워있는 침대 위로 중식도를 던진다. 물론, 칼을 던지기 전에 이렇게 말하기는 한다. "다쳐, 꼼짝마." 죽이거나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이 장면은 우리가 뉴스에서도 쉽게 접하는 형태의 명백한 '데이트폭력'이다. 이유와 의도가 어찌됐든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칼이 날아들었고, 사장의 말처럼 이건 '살인미수'다. 인물의 극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설정이 꼭 이런 폭력적인 방식이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극의 흐름상 바람을 피운 두 사람에 대해 서풍이 피해자로 묘사되는 상황에서 이 장면은 오히려 서풍의 행동을 정당화 할 위험도 있다. 

잠자리 거절에 노래방도우미 찾는 남자

드라마 <기름진 멜로> 중 한 장면 ⓒSBS


서풍이 들어간 동네 중국집은 조폭 두목 출신의 두칠성과 그의 후배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두칠성의 오른팔인 오맹달은 첫눈에 반한 중국집 새 여직원에게 잠자리를 거절당하고, 형님으로 모시는 두칠성도 짝사랑 상대에게 외면받는 걸 목격하고는 혼자 노래방을 찾는다.

문제는 이 장면에서 젊은 노래방도우미 여성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오맹달은 한두 번 와본게 아닌 듯 해당 여성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른다. 그리고는 나훈아의 '사내'를 열창하면서 하는 다음 대사가 압권이다. "오빠는 진정 사내다."

여자에게 거절당한 남자의 씁쓸함은 꼭 '노래방도우미'를 옆에 끼고 노래를 불러야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게 현실이라 변명하기엔 "요즘" 드라마에서 참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이 불필요한 장면이 무려 두 번에 걸쳐 꽤 비중있게 다뤄졌다는거다.

시대에 역행하는 드라마, 언제까지 봐야 하나

이게 끝이 아니다. 조폭 출신 후배들이 두칠성에게 연애 좀 하랍시고 "여자랑 자본 적은 시골 하늘의 별 같이 많아도, 여자랑 사랑해 본 적은 서울 하늘에 별 찾기"라 하지 않았냐면서 덧붙이는 마지막 말은 이렇다. "별은 (역시) 시골 하늘의 별이죠."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놀랍게도 이 모든 게 무려 한 시간짜리 2회분 방송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3회에서는 미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한 대사도 있었다. 세탁소 주인이 옷을 거울에 대 보는 여성에게 "예쁘다"고 하자, 여성은 "그딴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며, "요즘 미투인지 뭔지 그것때매 한국이 난리가 났으니 사장님도 조심하라"고 한다. 여성들과 말도 섞지 않겠다는 펜스룰이 오히려 대두되는 요즘 상황에서, 미투의 본질을 이해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던 대사다. 

드라마 <기름진 멜로> 티저 이미지 ⓒSBS
드라마는 우리의 사회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미투로 여성들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얼마되지 않았고, 지난주에는 몰카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집회에 무려 여성 1만명이 모였다. 작년에 방영한 <마녀의 법정>, 얼마 전 종영한 <라이브> 등의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와 폭력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그려냈다. 

그래서 <기름진 멜로>는 더 불편하게 다가온다. '로코믹 주방활극'이라는 소개대로 가볍게 볼 수 있는 로코를 기대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 거슬리는 대사와 장면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귀를 닫은 채 지금같은 수준의 젠더 감수성으로 계속 밀고 간다면, 이 드라마는 주 시청자층인 '젊은 여성'들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유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