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음악

애절하게 또 뜨겁게, 다시 돌아온 안치환

2018. 5. 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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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술 3년만에 정규 12집 <53> 발표
"담배 끊고 술도 거의 안마셔
살아온 중 지금이 가장 건강
그냥 노래들이 밝게 나오더라"

[한겨레]

암 수술 투병을 끝내고 3년만에 12집 음반을 낸 가수 안치환.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2014년 안치환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건강검진에서 직장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해 여름 수술을 받았다. 이듬해 낸 앨범 <50>에는 ‘나는 암환자’, ‘병상에 누워’, ‘희망을 만드는 사람’ 같은 곡들을 담았다. 앨범 제목은 자신의 나이에서 따왔다.

3년이 흘렀다. 안치환은 최근 정규 12집 <53>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제목을 나이에서 따왔다. 지난 14일 서울 연희동 참꽃스튜디오에서 만난 안치환은 “그 나이의 내가 만들고 부른 노래들로 내 삶의 궤적과 함께 세상과 소통한다는 의미”라며 “앞으로도 계속 나이를 앨범 제목으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치환은 건강해 보였다. 스스로도 “담배 안 피우고 술도 거의 안 마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살아온 중 가장 건강한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다소 무거웠던 <50>과 달리 <53>은 한층 밝아졌다. 안치환은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노래들이 그렇게 나오더라”고 했다.

두장의 시디(CD)로 이뤄진 <53>에는 17곡이나 담겼다. 지난해 봄 두달 동안 집중적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17년 전 긴 여행을 다녀온 뒤로 노래들이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는데, 작년이 그랬어요. 무슨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노래들이 계속 터져 나왔죠. 매일 노래를 썼는데, 곡마다 분위기도 다 다른 거예요. ‘딴따라’로서 무척 행복한 경험이었죠.”

창작의 봇물을 터지게 만든 마중물 같은 노래가 ‘오, 마이 갓!’이다. 안치환은 수술 직후 후유증으로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두시간마다 깼다. 자신의 힘겨움에, 앞 잘 안 보이는 세상에서 젊은 세대가 겪고 있을 괴로움, 당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막막함까지 겹쳐놓고 보니 노래가 절로 만들어졌다. 이후 다른 곡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타이틀곡 ‘빨간 스카프를 맨 여자’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예스터데이’를 만들었을 때처럼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로 만들었다. “꿈에서 좋은 멜로디를 들은 게 네번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눈뜨고 나면 담배연기처럼 사라지는 거예요. 이번에는 잠결에 일어나 스마트폰에 녹음하고 바로 또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역시나 기억이 희미했는데, 다행히 녹음돼 있었죠.”

그 꿈은 이렇다. 친구와 야트막한 동산에 올라갔더니 옛날 검은색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모여서 박수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예쁜색 빨간 스카프를 맨 여자 어디 있나요/ 예쁜색 빨간 스카프를 맨 여자 당신인가요.” 멜로디와 노랫말을 그대로 가져와 후렴으로 만들었다. “음악적 욕심으로 따지자면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이 없어서 아쉽기도 해요. 하지만 편안하고 대중적인 멜로디라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앨범에는 애절한 사랑 노래도 있다. “그대 나를 잊지 말아요 계절이 간대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냘픈 가성으로만 노래한 ‘나를 잊지 말아요!’다. 안치환 하면 민중가요만 떠올리는 이들에게 꼭 들어보라고 권하고픈, 아름답고도 내밀한 노래다.

암 수술 투병을 끝내고 3년만에 12집 음반을 낸 가수 안치환.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막걸리’는 파격 그 자체다. 함민복 시인의 시 ‘막걸리’에다 구성진 트로트 가락을 붙였다. “윗물이 맑은데 아랫물이 맑지 않다니/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지 이건 절대 아니라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며 마구마구 흔들어 마시는/ 아~ 서민의 술 막걸리 막걸리.” 록 버전으로 부른 ‘막걸리 1’과 뽕짝 버전으로 부른 ‘막걸리 2’를 나란히 실은 점도 재미있다.

두번째 시디에는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집중적으로 담았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담은 ‘불현듯 지는 꽃잎을 보며 떠오른 얼굴들’, 2016년 말 촛불집회 당시 발표했던 디지털 싱글 ‘권력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촛불의 힘과 환희를 기억하며 민중가수 손병휘·백자와 함께 부른 ‘너와 내가 모이면’, 제주 4·3 사건을 노래한 ‘4월 동백’ 등이다. 요즘 같은 디지털 음원 시대에 시디 두장짜리 앨범을 내놓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처지는 곡 하나 없이 모든 수록곡이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이 더 놀랍다.

“뜨거운 가슴은 식고 차가운 머리만 남았네/ 익숙한 끈을 애써 부여잡고 노래할 뿐”(‘지나가네’)이라지만, 안치환의 고군분투는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몇 곡의 영화만으로 먹고사는 한물간 가수가 싫어 그걸 벗어나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그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적 완성도를 유지하고 나이와 관록에 걸맞은 음악을 한다는 걸 똑바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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