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기타 명가 깁슨(Gibson) 파산.. 기타의 시대 저무나

김상화 2018. 5. 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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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연주하지 않는 청년들, 달라진 음악계 흐름 반영

[오마이뉴스 김상화 기자]

일렉트릭 기타의 대표 브랜드인 깁슨의 주요 제품들. 사진 중앙에 놓인 레스폴 기타를 비롯한 일련의 깁슨 제품들은 기타리스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Gibson
최근 음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지난 2일(미국 현지 시각) 세계적인 기타 제조업체 깁슨(Gibson)사가 파산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무려 5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감당할 길이 없었기에 깁슨은 자구책으로 이와 같은 결정을 하고 말았다.

채권단들이 회생을 위해 1억 달러 이상의 단기 대출에 동의하면서 다행히 주력 사업인 기타 제조업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그간 진행했던 각종 전자 기기관련 사업 등을 정리할 것이며 제조 공장 및 인력 감축 등 후속 조치 역시 있을 예정이다.

고가 정책 고수로 소비자 외면... 사업 다변화 시도 실패

깁슨은 펜더(Fender)와 더불어 일렉트릭 기타 시장을 양분했던 대표적인 업체였다. 특히 1960~1970년대 록 음악의 붐을 타고 '레스폴' 'ES-335' 등의 제품들은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기본 장비로 애용되었고 연주에 입문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악기로 대접받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사 펜더가 일본 및 멕시코 제조를 통해 단가를 낮추고 보급형 제품 출시 등을 통해 소비자 구매의 폭을 넓힌 데 반해서 깁슨은 특유의 고가 정책을 계속 유지하다보니 주머니 가벼운 사용자들을 유입하지 못했다.

게다가 타사 제품 대비 무거운 하중, 최신 인기 음악 장르와는 동떨어진 하드 록-블루스-재즈 연주에 최적화된 제품들이다 보니 연주의 범용성이 떨어지면서 점차 소비자로 부터 외면 받고 말았다.(주: 펜더의 경우 최하 몇십만 원대에서도 구매가 가능한 반면 깁슨 '레스폴'은 여전히 국내 판매가가 수백만 원대에 달한다. 또한 펜더의 대표 제품인 '스트래토캐스터'는 일반 팝부터 록-메탈-블루스-재즈-펑크-R&B 등 다양한 연주에 활용에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다)

게다가 환경 보호를 위한 벌목 규제 문제를 피하기 위해 타사 대비 지나치게 많은 양의 원목을 선구매했다가 관리 비용 급증 등 부작용도 뒤따랐다. 브랜드 명성에 걸맞지 않은 품질 관리의 소홀함 역시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렇다 보니 회사의 경영난은 점차 가중되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깁슨은 작곡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케이크워크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각종 전자 기기 사업에도 뛰어들었지만 경험 및 노하우 부족에 따른 시행착오로 인해 적자만 늘어나고 말았다.

더 이상 기타 연주에 열광하지 않는 젊은이들

일렉트릭 기타의 명가 펜더의 대표 제품인 펜더 스트래토캐스터 기타. 깁슨 레스폴과 함께 기타 업계를 양분하다시피한 명 악기 중 하나다. ⓒFender
연주인의 숫자 감소도 기타 관련 업체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더 이상 청년들은 기타에 열광하지 않는다. 록 밴드 대신 강렬한 비트를 들려주는 EDM이나 힙합에 열광하고 '헤드뱅잉' 대신 격렬한 춤이 사람들을 사로 잡은 지 오래다. 여기에 R&B 또는 감각적인 팝이 각종 공연 무대의 중심에서 대중들의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컴퓨터를 활용한 음악 만들기가 일반화되면서 굳이 기타를 구매할 필요성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실제 기타 연주에 견줄 만한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때 제이슨 므라즈 같은 팝스타나 Mnet <슈퍼스타K > 등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찾는 젊은이들이 잠시 늘어나기도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고 말았다. 해외 유명 음악 잡지에서 흔히 진행되는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명' 투표만 보더라도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연주인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기껏해야 자니 그린우드 (라디오헤드, 1971년생), 잭 화이트 (화이트 스트라입스, 1975년생), 데릭 트럭스 (올맨 브러더즈 밴드, 1979년생) 정도가 간신히 이름을 올리는 게 전부다. 여기서 1980~1990년대생 어린 연주인은 사실상 전멸에 가깝다.

생존 차원 사업 다변화 모색... 영광의 시대는 저물다

기타 앰프로 유명한 마샬은 일반 음악팬+소비자를 대상으로 이어폰, 헤드폰, 포터블 블루투스 스피커를 판매하는 식으로 사업을 다변화하고 있다. ⓒMarshall
깁슨뿐만 아니라 상당수 기타 관련 장비 업체들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만 해도 국내에서 제작되는 제품은 거의 드물고 대부분 생산 라인을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으로 옮기면서 비용 절감을 꾀하고 있다. 가내 수공업 형태로 수제 통기타, 클래식 기타를 제작하던 공방들도 이젠 상당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렇다보니 다수의 기타 관련 장비 업체들이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경영난을 타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연주인들에겐 친숙한 브랜드인 기타 전용 앰프 제조 전문 업체 마샬(Marshall)은 음악 감상용 이어폰+헤드폰+블루투스 스피커를 판매하면서 점차 일반 소비자 위주의 판로 개척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명 기타 제조 업체인 펜더만 하더라도 폴크스바겐과의 파트너십 계약을 통해 자사의 기술이 접목된 카 오디오 장비를 유명 차종에 탑재시키는 식으로 사업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기타가 세상에서 아예 사라지는 일은 전혀 없겠지만 한때 대중 음악의 중심에 놓여 있던 이 악기가 퇴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깁슨의 파산과 기타 장비 업체들의 경영난은 달라진 21세기 음악계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는 음악의 꿈을 키웠던 '기타 키드'들에겐 영광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통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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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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