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①]김태호 PD "황광희, '무도' 종영 소식에 펑펑 울었대요"
평균 이하의 사람들을 내세운 '무모한 도전'을 시작으로 '무리한 도전' '퀴즈의 달인'을 거쳐 지금의 '무한도전'으로 발전했다. 김태호 PD는 조연출 시절부터 이 프로그램과 인연을 맺었고 '무리한 도전'부터 메가폰을 잡았다. 30살부터 참여했다. 자신의 30대를 온전히 '무한도전'과 함께했다. 매주 목요일 '무한도전'의 녹화 날, 이젠 녹화가 아닌 쉼이 주어졌다.
김 PD에겐 아직 낯설고 어색하기만 한 상황. 가장 먼저 '다음 목요일부터 뭐하지?'란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그간 바닥이 드러난 문학적 소양을 채우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종영 기자간담회 때 베이지색 슈트로 한껏 멋을 냈다. "격식 있게 차려입었더니 주변에서 늙어 보인다고 하더라"면서 취중토크엔 젊은 감각의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등장했다.
-주사가 있나요. "자요. 대학교 때까지는 술 먹고 옷도 벗어보고 그랬는데 입사한 다음부터는 잘 자리가 정해지면 편하게 마시는 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잘 못 마셔요."
-종방연과 포상휴가 모두 잘 마쳤죠. "13년 전 예능 자체의 위상이 별로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적은 제작비로 효율성 있게 만들까?' 그게 주목적이었어요. 지금처럼 간판 프로그램이기 전에는 이런(포상휴가 같은) 대우가 힘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박수를 받으며 끝났잖아요. 더 오래 했으면 종영할 때 '관심 밖'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3년 만에 처음으로 쉼을 얻었네요. "친구들 모임에 거의 나가본 적 없어요. 항상 못 나간다고 해야 했죠. 친구들 편의에 맞추면 금요일 저녁에 봐야 하는데 방송 전날이라 너무 바빴어요. 대학교 친구들한테 '드디어 끝났으니 같이 여행가자'고 했어요. 친구 관계, 가족 관계 회복의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방송에서 친구들끼리 어디 가거나 뭐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너무 부러웠거든요."
-너무 바빠서 그간 가족과 시간을 많이 못 보냈겠어요. "진짜 CF처럼 아이 재우다가 아내가 전화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아이가 '아빠 또 집에 놀러 와'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불과 3~4개월 전이에요. 아내가 웃으면서 '아이고' 이러는데 진짜 충격적이었어요. 대한민국 모든 아빠가 그러겠지만 그때 정말 슬펐어요. 회사에서 늘 오후 9~10시 사이가 되면 자리에서 서성이며 갈등했어요. '지금 가면 아이를 볼 수 있는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은 못 했죠. 내가 결정해야 일이 진행되니까요. 최근엔 그런 일이 더 많았어요. 이번엔 가족과 긴 시간 있어 보려고 해요."
-창의적인 생각이 돋보였어요. 어떤 게 가장 큰 영감을 줬나요. "창의성 중 제일 중요한 요소가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공감 가지 않는 것에서 창의성이 나오기 어렵거든요. 모두가 공감하는 것에서 조금만 다른 걸 가미하면 무릎을 칠 수 있어요. 예전에는 뭔가 혁명 같은 변화를 던져야만 창의적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송창의 PD님이 신입시절 '너무나 새로운 걸 보여주려고 욕심내면 아무도 못 따라갈 거다. 대신 반 발자국만 나가면 다들 따라오면서 새롭다고 할 거다'라고 했어요. 모두에게 참신하다는 얘기를 들으려면 가능한 생각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죠. 그 말이 굉장한 도움이 됐어요."
-쉼 그리고 다음이 궁금해요. "새로운 것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볼 생각이에요. 계획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는데 정확하게 답을 못하겠어요. 6개월 파업으로 쉬어도 보고 프로그램에서 2달도 일부러 시간 내어 쉬어봤지만, 결국 돌아오는 게 '무도'이다 보니 그 틀에 자꾸 맞추게 되더라고요. 멤버들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이전처럼 좌충우돌을 잘 그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PD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일 많이 생각했던 게 ''무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였어요. 나에 대한 부분은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처음에 예측했던 6개월보다 훨씬 오래 달려온 프로그램이었어요. 시청자만 믿고 달려왔고 끝도 시청자와 함께 고민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네요."
-멈춤을 택한 결정적 이유가 있나요.
"나의 쓸모를 스스로 너무 잘 알잖아요. '무도'에 도움이 될 만한 걸 뽑아내지 못할 것 같았어요. 이게 얼마나 치명적인 약점이 될지 그게 걱정이었거든요. 지난 20년 이상 살아왔던 내 삶에서의 스토리를 '무도'에 다 쏟아냈어요. 또 다른 경험들이 쌓여야 다시 달려갈 수 있잖아요. 대한민국 예능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은 소진되는 경향이 많아요. 너무 오랫동안 방송하니까 크리에이터, 스토리텔러로서 소진되어 버리는 게 안타까워요. 이번엔 틀을 정하지 않고 뮤직비디오부터 다른 장르까지 다양하게 고민하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고민도 듣고 싶고요."
-종영 기자간담회에서 '과연 1등이 맞나 의문이 거듭 들었다'고 했죠.
"13년간 달려왔다는 표현 자체가 부끄러워요. 혼자 달려온 것도 아니고 많은 스태프와 제작진이 함께한 거였어요. 하지만 시간에 쫓겨 얼렁뚱땅 취합해서 방송을 낸 것도 있었어요. 대한민국 국민이 좋아하는 1등 프로그램도 좋지만, '과연 1등이 맞나?' 하는 의문이 거듭 들었어요. 내가 봐도 재미가 없는데 예고나 홍보는 재밌는 것처럼 해야 하는 상황이 거짓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넷플릭스에 '블랙미러'라는 시즌제 드라마가 있어요. 시즌당 몇 부작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아요. 할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나오는 방식이죠. '무도'도 그렇게 특별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예능도 관찰 아니면 버라이어티잖아요. 유재석 씨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상징인데 각자의 프로그램에서 유재석 씨를 다양하게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어떻게 보면 지금 멈춘 게 잘한 것 같다는 믿음이 있어요. 나중이 돼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진 잘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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