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긴 하더라".. 귀여운 걸그룹의 불편한 메시지

김도헌 2018. 4. 1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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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오마이걸 반하나의 신곡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를 둘러싼 논란

[오마이뉴스 김도헌 기자]

걸그룹 오마이걸의 유닛 오마이걸 반하나 멤버 효정, 비니, 아린은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에서 제목 그대로 바나나를 좋아하지만 알레르기가 있어 슬픈 세 마리 원숭이가 됐다. 바나나 먹지 못하는 원숭이라는 사실이 한심하고, 값싼 동정은 필요 없다며 우울해하는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건 엄마가 사다주신 바나나맛 우유다. 다리를 긁는 코믹한 안무와 단순한 멜로디, 귀여운 콘셉트의 이 노래는 유튜브 조회수 100만을 상회하며 화제를 모았다.

엉뚱한 큐트 콘셉트로 매니악한 취향을 공략하는 걸 그룹 유닛(오렌지 캬라멜, 레인보우 픽시 등)의 전례를 참고한 시도 자체는 낯이 익다. 문제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에 담긴 여러 메시지가 그리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알레르기를 희화화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고(2018년 4월 6일 <중앙일보> "알레르기 한심해"…오마이걸 반하나에 쏟아지는 학부모 항의), 유아스러운 콘셉트에 트위터 상에선 '로리타 논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설수에 오르자 소속사 WM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이번 오마이걸 반하나의 팝업 앨범은 하나의 이야기가 이어진 앨범으로 가사의 일부 단어가 아닌 곡 전체 맥락에 담긴 스토리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씀을 간곡히 전하고 싶습니다.

오마이걸 반하나의 타이틀곡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거나 결핍된 부분이 있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며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노래한 긍정적인 메시지의 곡입니다.

오마이걸 반하나의 타이틀곡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거나 결핍된 부분이 있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며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노래한 긍정적인 메시지의 곡입니다. 실제로 이번 앨범을 작사/작곡하신 피디님도 사과 알레르기를 겪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동화적인 재해석을 통해 만드신 곡이라고 앞서 쇼케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수록곡 '하더라'는 서로 다름에 대해 일반적인 시선이 주는 '오해'에 대해서 표현한 노래입니다. 서로 다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해나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입니다."

'바나나 우유 있어서 행복해'? 결여된 이해와 공감의 메시지

오마이걸 반하나 티저 이미지 속 오마이걸 멤버들. ⓒWM엔터테인먼트
이 곡이 알레르기 환자들을 의도적으로 희화화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상황의 누군가가 그 자신을 '한심하다'라고 생각하는 가사가 긍정적이진 않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값싼 동정은 필요 없으니' 같은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바나나 좋아해'라고 일반적이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는 모습도 보인다. 바나나를 못 먹는 게 그렇게 큰 죄일까? '남들과 다르거나 결핍된 부분이 있더라도'라는 해명은 그래서 이상하다. 바나나 못 먹는 것이 남들과 다르긴 할지언정 결핍된 부분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희망을 가지고 극복해나가야 할 부분 또한 아니다. 개인의 사정일 뿐이다.

앨범 전체의 흐름을 제시한다는 다음 트랙 '하더라'는 오히려 그 오해를 부추기는 인상을 준다. 알레르기 원숭이들을 바라보는 일반 원숭이들은 '재수 없긴 하더라. 바나나만 골라내더라. 날씬해서 얄밉긴 하더라', '챙겨준 내 맘을 외면하더라. 한입만 먹여도 뱉어내더라' 등의 편견을 갖고 있다. '그래도 착한 앤 거 같아'라는 원숭이에게는 '너 대체 누구랑 친구야? 그 애랑 친구인 거 아냐?'라는 날선 반응이 뒤따른다.

이를 '일반적인 시선'이라 평하기는 어렵다. 다수의 취향과 의견에 부합하지 않는 소수를 등 뒤에서 수군대는 인상인데, '그 애 엄마도 매일 울고 있더라. 그 애 아빠는 집을 나갔다더라' 등 알레르기 원숭이가 겪을 고통을 언급하면서도 대화는 상호 간의 이해로 연결되지 않는다. 곡이 끝나도록 '혼자만 행복해 웃고 있더라'며 들리지 않을 추측만 할 뿐이다.

황당한 건 이 갈등의 결론이 '엄마가 손에 꼭 쥐어주신' 바나나맛 우유라는 것이다. 특정 상품 광고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알러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설픈 대체재라는 발상은 슬프다. 굳이 바나나 우유를 먹어가면서까지 타인의 시선을 맞춰야 하는 걸까. '그래도 나는 바나나 좋아해'라는 귀여운 후렴부가 원숭이 친구들과 어울리고픈 알레르기 원숭이의 절실한 외침으로 들린다면 과장일까.

그러나 바나나 우유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이를 두고 원숭이들은 '실실 웃고 다니더라. 결국 살짝 돌았나 보더라. 재수 없긴 하더라. 노란색 우유만 먹더라'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뿐이다. 특정 관념을 주입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알레르기로 인한 고통을 무시하고, 바나나와 비슷한 바나나 우유라도 먹어야 하는 상황을 강요하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뭘 구한다더라'는 그 애 아빠의 처지가 애처롭다.

바나나 우유 찾지 않아도 수군댐 없는 사회가 되어야

걸그룹 오마이걸의 유닛 오마이걸 반하나 앨범 커버 ⓒWM엔터테인먼트
바나나 알레르기가 있으면 바나나를 먹지 않으면 된다. 그것은 특별한 주제도 아닐뿐더러 바나나를 먹는 다른 원숭이들에게 쑥덕거림을 당할 일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알레르기 원숭이로 인해 그 엄마와 아빠는 힘들어하고, 바나나 우유를 구해주고 나서도 주위 원숭이들의 오해는 풀리지 않는다. 노랫말 속 원숭이를 사람으로 바꿔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개인의 취향과 다양성, 특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개개인을 포용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현대 사회에서 소수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결여된 노랫말이다. 비록 그 저의가 해명처럼 행복과 긍정적 에너지를 목표로 하고 있더라도 표현의 방식이 투박했다.

WM엔터테인먼트와 작곡가는 아마 애초에 이런 논란까지 염두에 두진 못했을 것이다. 오마이걸 반하나의 목적은 큐티 발랄 콘셉트를 통한 인지도 확장이고, 귀여운 세 멤버와 앙증맞은 안무가 핵심이지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도에 없었다고 한들 그 결과가 논란의 여지를 불러온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되려 무감각한 자세가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를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다름을 덮어놓고 숨기기보단 그 자체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프로 불편러'나 '일상생활 불가능한' 발상으로 치부하기엔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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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15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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