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용산참사 생존자 만난 까닭

유지영 2018. 1. 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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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진행하는 CBS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오마이뉴스 글·사진:유지영, 편집:최유진]

"안녕하십니까. '예은이 아빠' 유경근입니다. 오늘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한다'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좀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스튜디오 안으로 유경근씨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난 21일 낮 12시 목동 CBS 한 라디오 스튜디오 부스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이자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인 유경근씨가 진행을 맡은 한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녹음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21일 4.16연대, 4.16가족협의회, CBS가 함께 제작한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의 진행자 유경근씨가 용산참사 생존자 김창수씨를 만났다. CBS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은 한국 사회의 재난, 사회적 참사의 유족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방송이다.
ⓒ 유지영
 지난 21일 4.16연대, 4.16가족협의회, CBS가 함께 제작한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의 피디인 정혜윤씨가 목동 CBS 사옥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CBS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은 한국 사회의 재난, 사회적 참사의 유족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방송이다.
ⓒ 유지영
CBS와 4.16연대가 제작하는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은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 위원장이 매주 다른 사회적 재난(참사)을 겪은 유가족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의 팟캐스트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등으로 가족을 잃은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출연하고 유경근씨는 이들에게 가감 없이 질문을 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은 사람이 역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이들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담는 방송. 이 방송은 그야말로 '세상 끝의 연대'다. 현장을 찾은 21일엔 용산 참사 9주기를 맞아 용산 참사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김창수씨가 출연했다.

유경근씨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마이크를 잡고 멘트를 이어갔다.

"용산 참사는 많은 분이 기억 하실 텐데요. 지난 1월 20일이 용산 참사 9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용산 참사의 생존자 김창수씨는 이날 두 시간여 걸쳐 진행된 녹음 중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끔찍했던' 그날의 증언이 그의 목소리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김창수씨가 특히 울컥한 순간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그 순간 참으로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참사로 딸을 잃은 유경근씨가 김창수씨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재난 피해의 당사자들만이 같은 처지에 놓인 당사자를 위로해줄 수 있는 건 아닐까.

"유가족들이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기회 됐으면"

 4.16연대, 4.16가족협의회, CBS가 함께 제작한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의 진행자 유경근씨가 삼풍백화점 참사 유족 조종규씨를 만났다. CBS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은 한국 사회의 재난, 사회적 참사의 유족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방송이다.
ⓒ CBS
<세상 끝의 사랑> 녹음을 끝내고 만난 유경근씨는 "참 쉽지 않다"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것도 쉽지 않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오셨던 분들이 대부분 '속 시원하고 편하게 이야기 잘 하고 간다'며 밝은 모습으로 나가시는 걸 보면 '이런 자리를 마련하길 잘 했나 보다' 그런 생각도 든다."

팟캐스트인데다, 매주 목요일에 한 회씩 업로드되기 때문에 정해진 분량은 없지만 시간을 충분히 채우고 남을 정도로 질문과 답변이 빼곡했다.

유경근씨는 웃으며 "(진행을) 잘 하고 못 하고는 큰 의미가 없다. 내가 이걸 직업으로 삼을 것도 아니고"라고 말하면서도 "유가족들이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거의 없다. 이야기해봐야 잘 이해도 못 해주고 마음 속에 죽을 때까지 갖고 살아야 하는데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의미다 있다"고 전했다.

"일단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나 유가족들이 숨어서 살아야만 하는 사회적인 현실을 내가 직접 겪어보니 잘 알게 됐다. 그리고 이 사회가 참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유가족들의 경험을 충분히 공론화시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가족들이 배제되는 게 아니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주체로서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겠다 싶더라.

그래서 유가족이 진행하고 유가족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이 고립되지 않고 같은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사회 전체에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경근 위원장)

 2016년 세월호 유족은 유럽을 방문해 독일 에스토니아호 참사 피해단체와 영국 힐즈버러 참사 피해자 단체 등을 만났다.
ⓒ 416 가족협의회
2016년 세월호 유가족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피해 단체의 연대체인 '펜탁'이라는 곳을 방문하게 된다. '펜탁(FENVAC)'은 1994년 열차 사고로 아들을 잃은 유가족이 여러 대형 참사 피해 단체들을 모은 끝에 발족된 단체. 이들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피해자와 가족들이 가족협의회를 구성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마치 한국에 4.16 연대나 4.16 가족협의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 끝의 사랑>의 기획은 2016년 세월호 유가족의 '펜탁' 방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세상 끝의 사랑>의 정혜윤 피디는 '펜탁'을 직접 보고 온 유경근씨의 말을 들으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방송을 통해서나마 피해자들과 유가족들끼리 서로 연대하는 것. 그리고 단순히 피해자의 유가족으로 머무는 것을 넘어서 그들 스스로의 이야기를 공론화시키는 것. 그 공론화시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어보는 것.

"다른 사람이 나 같은 일을 겪지 않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유경근 위원장의 말은 <세상 끝의 사랑>의 기획 취지와 제작 방향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다른 참사를 막을 제도적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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