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온에어] '사람이 좋다' 박재란, 이혼·10억사기·수감생활..故 딸 박성신 생각에 눈물

김한길 기자 입력 2018. 1. 21. 08:48 수정 2018. 1. 2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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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좋다' 가수 박재란이 우여곡절 많았던 자신의 인생사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박재란은 "천국 간 딸 생각나면 혼자서 많이 운다"고 말했다.

특히 박재란의 둘째 딸은 고(故) 가수 박성신.

자신 보다 먼저 가버린 딸을 가슴에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날 박재란은 "너무 보고싶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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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좋다 박재란

[티브이데일리 김한길 기자] '사람이 좋다' 가수 박재란이 우여곡절 많았던 자신의 인생사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21일 오전 방송된 MBC 교양프로그램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이하 '사람이 좋다')에서는 '유쾌한 가수' 박재란 편으로 꾸며졌다.

이날 박재란은 종로의 한 공연장을 찾아 자신의 히트곡 '산너머 남촌에는'을 열창, 관객들을 열광케 했다. 그는 첫 무대에 올랐을 때 나이는 16세에 불과했다. 이후 '럭키모닝' 푸른 날개' '둘이서 트위스트' 등 신나는 곡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여유 있는 표정과 꾀꼬리 목소리로 인기를 끌었던 것. 특히 196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박재란이었다.

그리고 그는 1966년 결혼에 골인했다. 그러나 13년 만에 파경 했다. 이에 대해 박재란은 "우울증이 와서 병원에 입원도 했다. 이혼하고 나서 일 못했다. 미음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한국에 머물 수가 없어서 미국으로 떠났다. 그 당시 이혼이라는 건, 여자가 한 번 죽는 거였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털어놨다. 견디기 힘들어 선택한 미국 생활이었지만, 사기에 수감생활까지 겪으며 최악의 시기를 맞았다.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

박재란은 "미국서 한 여자가 스테이크 레스토랑을 내자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지고 간 돈, 지금으로 따지면 한 10억 이상을 믿고 투자했다. 레스토랑까지 보여줬지만, 사기였다. 세상 분들은 '참 팔자 세다'고 한다. 수갑도 찼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는데, 펑펑 울어도 시원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많은 역경에도 노래를 버릴 수 없었다고.

박재란은 슬하에 여러 딸들을 뒀지만, 현재 큰딸만 곁에 있는 상황. 박재란은 "천국 간 딸 생각나면 혼자서 많이 운다"고 말했다. 특히 박재란의 둘째 딸은 고(故) 가수 박성신. 박성신은 1987년 대학가요제로 데뷔 후 '한 번만 더'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2014년 4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 보다 먼저 가버린 딸을 가슴에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날 박재란은 "너무 보고싶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박재란은 "연예인 생활하면서 돈은 벌어야겠고, 여기저기서 막 부르니까 임신해서 복대를 찼다. 아이 임신을 모르게 하려고 복대를 너무 꽁꽁 묶었다. 그래서 아이가 못 버티고 조산했다. 인큐베이터에서 석 달 이상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각 기관이 다 약했다. 그래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티브이데일리 김한길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박재란|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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