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없다'는 12.7cm 미니인간, 신선하지만 불편하네

권오윤 입력 2018. 1. 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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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윤의 더 리뷰 186] 영화 <다운사이징> , 설정은 SF지만 성장 드라마가 중심

[오마이뉴스 글:권오윤, 편집:최유진]

지구 생태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개발이라는 핑계로 환경을 계속 파괴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자연을 이용했지만, 점차 인간 사회가 발전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추구하면서 환경 파괴는 가속화됐습니다.

영화 <다운사이징>(1월 11일 개봉)은 발전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존립 기반인 지구 환경을 갉아 먹고 있는 인류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작합니다. 노르웨이의 어느 연구소는 인간의 크기를 손바닥만 하게 줄이는 기술을 개발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니 인간'은 자원을 적게 소비하기 때문에 환경과 공존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평범한 물리치료사 폴(맷 데이먼)은 아내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와 함께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는 동창 모임에 갔다가 미니 인간의 삶을 택한 부부를 만나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지속가능한 대안적 삶이란 이상에도 끌렸지만, 지금 가진 돈으로도 엄청난 부자로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점에 혹한 것이죠. 폴은 고심 끝에 아내와 함께 미니 인간이 되기로 하고 시술까지 마치지만, 오드리는 마지막 순간 포기하고 돌아섭니다.

인간 축소 기술은 독특하지만

 영화 <다운사이징>의 스틸 컷. 폴(맷 데이먼)은 동창 모임에서 미니 인간의 삶을 사는 친구를 만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폴이 미니 인간 시술을 받는 과정입니다. 시술 대상자는 온몸의 털을 밀고 치아 보철물을 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주사제를 맞고 처치실에 누워 기다리면, 주걱으로 떠낼 수 있을 만큼 작은 존재로 재탄생하게 되지요.
하지만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기발한 과학 소설적 설정은 전체 이야기에서 그리 큰 몫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작은 인간으로 살면서 보통 크기로 살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생의 통찰을 얻게 된다'는 식의 교훈도 없습니다.

대신, 팍팍한 현재의 삶을 어떻게든 변화시키고 싶었던 평범한 백인 남성의 마음에 주목합니다. 주인공 폴은 인생을 뒤바꾸는 결정을 하지만, 그 뒤에도 별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이국적인 베트남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한 끝에 조금 성장하게 되지요. 결국, 인간 축소 기술은 이 영화에서 볼거리를 담당하는 것에 그칩니다.

영화 전반에 깔린 성차별적, 인종 차별적 시선도 불편합니다. 폴의 관점에서 여성은 이상적인 신기술을 못 알아보는 어머니이거나, 마지막 순간에 배신하고 떠나간 아내이거나, 파티 장면에서 우연히 만나 키스해 주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에게 의미 있는 여성은 '다르게' 생겼으면서 당돌하게 관계의 주도권을 쥐는 동양인 여자 트란(홍 차우) 뿐입니다. 이상한 억양으로 말하지만, 매력 있는 그녀는 백인 남성이 동양인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판타지를 구현한, 매우 전형적인 캐릭터로 나옵니다.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한 알렉산더 페인은 <일렉션>(1999), <어바웃 슈미트>(2002), <사이드웨이>(2004), <디센던트>(2011) 등으로 호평 받으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감독입니다. 그중에서 <사이드웨이>와 <디센던트>는 그에게 아카데미 각색상을 안겨 주기도 했죠.

따지고 보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여성에 대해 피해 의식을 지닌 백인 남성 주인공의 이야기였습니다. 여자들은 야망에 가득 차서 남자를 이용해 먹거나(<일렉션>), 이혼하고 떠나 버리고(<사이드웨이>), 남편이 모르는 새에 바람을 피웁니다(<어바웃 슈미트>, <디센던트>). 남자 주인공이 영화가 끝날 때쯤 조금 성장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나마 이전 작품들은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어서 그런지, 백인 남성의 시각을 풍자하는 어조가 살아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지닌 문제를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 확장해 볼 만한 여지도 있었고요. 그러나 원작 없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든 이번 <다운사이징>에서 창작자가 폴을 대하는 태도는 풍자보다는 공감과 연민에 가깝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순간, 무엇을 해야 하나

 영화 <다운사이징>의 스틸컷. 폴(맷 데이먼)은 미니 인간 사회에서 베트남 여성 트란(홍 차우)를 만나 진정한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살다 보면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특별히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싫어진 것은 아니지만, 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그래서 그간 안 해봤던 일도 해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많은 경우 이런 변화가 별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만 반짝 효과가 있을 뿐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쓴웃음을 짓게 되지요.

이 영화의 주인공 폴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미니 인간이 되기로 했지만, 그의 삶은 똑같이 단조롭고 지루합니다. 후반부에 노르웨이로 간 그가 이상을 좇는 또 다른 삶에 혹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도 다시 일상이 권태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고 우리 주변의 환경만 바꾸려고 할 때 나타납니다. 새로운 직장이나 취미를 갖거나, 혹은 새 친구를 사귀면서도 정작 자기 삶의 방식은 바꿀 생각이 없다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만약 자기 삶에 문제가 있고 이젠 정말 달라지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 이전과는 다른 길로 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기존의 습관이나 가치관에 기반을 둔 우리의 선택이 지금의 문제와 불행을 낳았는지도 모르니까요. 이것이 바로 <다운사이징>의 결말에서 폴이 내린 결정의 의미입니다.

 영화 <다운사이징>의 포스터. 기발한 SF 설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변화가 필요한 사람에겐 교훈을 준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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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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