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TV]"죽지말라 빌어" 이경애 사모곡, 시청자 울렸다(마이웨이)

뉴스엔 2018. 1. 19.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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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박아름 기자]

이경애 사모곡이 시청자들을 울렸다.

1월 18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유머일번지’, ’쇼비디오자키’ 등에 출연하며 대한민국 개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개그우먼 이경애의 파란만장 인생사가 공개됐다.

14살 어린 나이부터 5남매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한 이경애는 돈을 벌기 위해 죽기살기로 달리고 또 달렸다. 술 때문에 돈을 써버리는 아버지 때문에 장사하느라 고생했던 어머니를 호강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학비가 없어 중학교도 가지 못했던 이경애는 "엄마가 한푼한푼 모아 그 당시 집값이 70만원이었는데 집값을 마련해놨다. 근데 아빠가 1년만에 누가 꾀어내 노름을 하신 거다. 집도 다 압류가 들어와버렸다. 엄마가 몇 년에 걸쳐 모아둔 돈으로 집이 날라가니 오갈데가 없는 거다. 엄마가 절망이 와서 그냥 맥을 놔버리면서 정신 이상이 됐다. 혼이 빠져버렸다.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엄마가 집을 나갔다. 뒷산에 가면 나무에서 목을 매고 있는 거다. 어머니를 붙잡고 빌었다. 엄마 죽지 말라고,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릴테니까 죽지 말라고 빌었다. 엄마가 '너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고 두드려 팼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강제로 끌고 내려왔다.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또 없어졌다. 미치는 거다. 개천가에 누가 꽃 꽂고 노래부르고 있다고 있다 해서 가서 찾아놨다. 초6 졸업하고 내 인생에 있어 최악이었다"고 힘들었던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삶을 포기한 엄마한테 희망이 되고 싶었던 이경애는 "목매단 걸 네 번을 발견해 살려드렸고 한 번은 쥐약을 드신 거다. 그래서 내가 그걸 발견해 병원에 데려다줘 위세척하고 살아났는데 간, 위, 신장을 다 버린거다. 그 뒤부터 엄마가 아무것도 못하고 병원에 누워만 있었다. 병이 깊어진 거다. 그때 내가 깨달았다. 내가 뭘 하든 성공해야 되는구나. 공부는 안되고. 그때 내 인생을 설계한 게 '그래 연예인이 되자'였다. 연예인은 나이가 상관없으니까. 그때부터 연예인의 꿈을 꾼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고 털어놨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진 이경애의 삶은 버거웠다. 이경애는 "슬픈 음악 들어면 슬펐다. 의지할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같은 이경애의 간절한 소망은 끝없는 노력으로 현실이 됐다. 개그우먼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이경애는 삶의 새로운 빛을 찾았다.

그러다 이경애는 어머니와 힘든 이별을 해야 했다. 어머니가 5남매 중 유독 자신을 예뻐했다는 이경애는 "마지막 임종을 못 봤다. 임종은 친구 임미숙이 봤다. 난 안 보고 싶어 태국으로 도망갔다. 내가 없으면 안 갈 거라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안 가면 안 돌아가실 거라 생각했다. 근데 전화를 받은 뒤 비행기 타고 얼른 한국에 들어갔다. 공항에 딱 도착하니까 전화오더라. 운명하셨다고 아침에. 그래서 임종도 못 봤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슬픔을 추스를 틈도 없이 아버지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5일 뒤 세상을 떠났다. 이경애는 "아빠가 잠깐 정신이 돌아왔다. 아빠가 '우리 딸 고마워'라 하더라. '무능한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해줘 고마워. 수고했어' 그러면서 가셨다. '고생 많이 했어. 우리 딸 잘 살거야' 그러고 가셨다"며 "아버지가 엄마 바지 가랑이 잡을 거라 그랬는데 진짜 그랬다. 나중엔 아름답게 가셨다. 둘이 뽀뽀하고 손잡고 포옹하고.. 그리고 나서 둘이 혼수상태가 됐다"고 전했다.

부모를 모두 묻은 묘지를 딸 희서와 함께 찾아간 이경애는 "엄마란 단어는 아무리 시간이 가도 생각하게 되고 그립고 그런 것 같다. 난 엄마랑 워낙 사이가 좋아 너무 힘들었다"며 "그래서 난 오히려 희서랑 사이가 안 좋고 싶다. 왜냐하면 나 가고 나서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 싫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경애는 자신이 떠난 뒤 희서가 혼자 감당해야할 슬픔이 걱정되기만 했다. 그래서 이경애는 악착같이 건강 관리 중이다.

이경애는 마흔 넘어 시험관 시술로 낳은 딸 희서와 7년째 전원생활을 해오고 있다. 2007년 교통사고 후 무릎 수술을 하고 맹장 혹 제거 수술, 갑상샘 항진증까지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웠던 이경애는 오로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는 데만 목표를 두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나뿐인 가족 희서의 건강도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다. 희서는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경애는 "딸에겐 힘든 삶을 주기 싫다. 막아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인생을 참 열심히 잘 살았단 생각이 든다. 구부리고 힘들게 나왔는데 뒤돌아보면 길이 예쁜거다. 그게 내 인생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이경애는 "희서가 '엄마 너무 불쌍하다' 한다. '새아빠 만나 잘 살았으면 좋겠어. 동생 하나 낳아주면 안돼? 엄마만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아름다운, 꽉 찬 가정을 만들어보려 한다"고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공개했다. 꽃길만 펼쳐질 이경애의 인생에 벌써부터 아낌없는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캡처)

뉴스엔 박아름 ja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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