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①] '리어왕' 강경헌, 욕심과 열정의 간극에서

입력 2017. 12. 29. 14:42 수정 2017. 12. 2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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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다른 길을 선택했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이 질문. 화려한 스타들이라고 살아오면서 단 한 가지 꿈만 쫓았으랴. 그들의 마음속에 고이 접혀있는 또 다른 모습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단지 말과 글로만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닌, 실제 그 모습으로 꾸며진 채로! bnt 기획 인터뷰 ‘What If’는 스타가 꿈꿨던 다른 모습을 실체화 시켜본다. -편집자 주-

[김영재 기자] ‘What If’ 아홉 번째 주인공으로 배우 강경헌을 만났다.

“경헌이란 이름이 어렵죠? 강경헌이에요.” 인터뷰 중간 기자는 실례를 범했다. 발음이 꼬이며 “강경현”이라고 배우의 이름을 잘못 부른 것. 이에 배우 강경헌은 그간 이런 혼동이 자주 있었다는 듯 웃음과 함께 그의 이름을 정정했다.

극단 ‘목화’에서 ‘부자유친’을 공연한 어린 소녀는 약 30년 간 연기 생활을 이어왔다. 그리고 소녀는 성인이 되어 ‘장르물의 악녀’란 호칭을 얻었다. 하지만 인터뷰 속 강경헌은 악다구니 쓰는 악녀 아닌 열정의 배우였다. 가상과 실제의 혼동 속에서 강경헌의 반전은 피어났다.

이 가운데 강경헌이 택한 ‘What If’ 주제는 낯선 곳과 플라멩코(Flamenco)다. 땀 냄새가 폴폴 나는 열정을 택한 배경에는 다년의 연기 생활 동안 배우 강경헌이, 인간 강경헌이 겪은 부침이 있다. 호연(好演)의 배우지만 연기 하나로 요약되기에는 그가 지닌 사연이 깊다.

‘말할 거리가 많은’ 배우 강경헌에게 11월에 공연된 연극 ‘리어왕’을 화두로 꺼냈다. ‘리어왕’은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4대 비극 중 하나다. 영국의 왕 리어가 효심 깊은 셋째 코델리아를 내쫓은 후 맏딸과 차녀의 배신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에서 강경헌은 맏딸 거너릴을 표현했다.


Q. 먼저 ‘What If’ 참여 소감이 궁금해요.

“사실 어느 순간부터 ‘만일 배우가 아니었다면’이란 생각은 안 하고 살았어요. 배우가 저의 숙명이라고 생각했죠. 배우가 아니라면 뭘 하고 싶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많은 생각이 스쳤어요. 하고 싶었던 게 워낙 많았거든요.”

Q. 콘셉트는 맘에 들었나요? 춤 동작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촬영하면서 ‘정말 플라멩코를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어요. 몸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마음만 가지고 했어요. 플라멩코를 하고 싶었을 때의 느낌을 살렸다고 할까요. 느낌만 있고, 동작은 정말 춤을 추는 분들께서 보신다면 아마 말도 안 되는 동작일 거예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 흉내를 낸 거죠.”

Q. ‘리어왕’ 이야기를 해볼게요. 긴 시간 동안 거너릴을 홀로 표현했어요.

“저에게 더블 캐스팅은 객관화예요. 다르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배우와 의논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과정은 인물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찾아갈 수 있는 좋은 시간이죠. 하지만 넉넉지 않은 연습 시간과 리허설 시간 속에서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춰가는 게 아쉬웠어요.”

Q. 그렇지만 혼자 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 말고도 원 캐스트로 가는 배우들이 많았어요. 말씀하신 대로 다들 많이 힘들어했고요. 게다가 와이어리스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했어요. 정말 아침이 되면 목소리가 아예 안 나왔어요. 눈물이 날 거 같았죠.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전달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공감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두려움이 있었어요.”


Q. 리어왕은 거너릴에 대해 “돌덩이 같은 심장을 가진 악마”라고 표현해요. 심지어 종기와 염증에 비유하기도 하고요. 뻔한 악녀를 연기하는 것은 배우의 성에 차지 않았을 듯해요.

“전 거너릴이 가장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아야 할 맏딸이기에 그렇지 못한 걸 티내지 않고 괜찮은 척 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했을 거라고 봤어요. 리건과 달리 거너릴은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을 거예요. 얼마나 상처가 많았을까요. 그의 위치와 삶에 대해서 스스로 챙겨야 했을 거예요. 그런 거너릴에게 기회가 왔으니 놓치지 않고 잡아야만 했다고 봐요.”

“이번 작품에서 연출님이 거너릴에게 주문한 것은 절제였어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들키지 않기를 바라셨죠. 아버지인 리어가 저주를 퍼 부을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저는 그저 가만히 듣기만 하고 서 있었어야 했어요. 사실 제 안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공포가 올라오는데 표현할 길이 없었어요. 올라오는 감정을 꾸역꾸역 누르고 견뎌내려 하다 보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이가 갈리더라고요. 혹시 공연 보시면서 느껴지셨나요?”

Q. 신선한 해석이네요.

“제가 더 잘 표현했어야 되는데. (웃음)”

Q. 배우가 참고 있는데 일반 관객은 발견이 힘들죠.

“카메라에 담고 있다면 분명히 전달됐을 텐데 그 큰 무대 위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거너릴을 연기하면서, 전반적으로 그런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거 같아요. 상대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는 중간에 합의되지 않은 리액션을 하면 남을 해치죠. 해치지 않으면서도 포인트를 찾아서 하는 게 아직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Q. 부정한 사랑인 에드먼드의 죽음에 절규하는 거너릴을 보면서 사랑은 악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나요?

“거너릴은 에드먼드에게서 처음으로 사랑과 인정을 느꼈을 거라고 봤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원하는 걸 쟁취했다고 느낀 거너릴이지만 순간 모든 걸 잃게 돼요. 절정의 순간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보면 거너릴은 단지 대사 몇 마디를 남기고 퇴장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그 잠깐의 순간에 모든 걸 관객에게 전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때 생으로 소리를 지른 탓에 목이 많이 상했어요. 뒤죽박죽 엉켜버린 감정의 극(極)을 표현해야 했거든요. 훈련된 발성으로는 전달이 안 될 거 같았어요.”


Q.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에요. 셰익스피어를 향한 감정이 남다를 듯해요.

“대학교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집에서 세계 문학 전집을 읽었어요. 부모님께서 사주시는 필수 도서 있잖아요. 4대 비극을 읽으면서 대사에 충격을 받았어요. 사실 전 셰익스피어 작품을 볼 때마다 굉장한 막장이라고 느껴요. 근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정말 주옥같죠. 인생을 담은 메시지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막장의 소재로 굉장히 철학적인 얘기를 해준다고 봐요. 어찌나 고급스럽고 시적인지. 전 그때 보면서 셰익스피어가 천재라고 느꼈어요.”

Q. 극단 목화의 연극 ‘부자유친’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우연히 그 작품에 들어갔고, 덕분에 프로가 연기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초등학교 6학년 옛날 일인데도 기억이 다 나요. 뜨거웠어요. 그래서 가슴이 벅찼어요. 그 당시 전 너무 어려서 그냥 시키는 대로 할 때였어요. 인물 해석이고 뭐고 없었죠. 그런데도 선배들께서 하시는 연기를 보면 사도 세자의 감정이, 영조의 감정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냥 그 에너지가 그대로 들어와서 제 에너지가 됐어요. 연기와 사랑에 빠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가 아닐까 싶어요.”

Q. ‘부자유친’ 동료 중에는 배우 성지루가 유명해요.

“성지루 오빠가 대학교 1학년 때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오빠가 저를 딸 데리고 다니듯 제 모든 걸 챙겨주셨죠. 그때는 오빠의 고마움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단원 막내로서 다른 할 일도 많으셨을 텐데. 후에 제가 방송에 나오는 걸 보고 ‘쟤 경헌이 아니야?’라고 놀라셨대요. 연락을 주셨는데 전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더라고요.”

Q. 연극 ‘기린의 뿔’에서는 장옥정을 연기했어요. 관점에 따라서 장옥정 역시 악녀예요.

“‘리어왕’ 할 때 맨날 제가 얘기했어요. ‘내 정서는 코델리아인데 왜 거너릴을 시키냐. 난 정의를 위해 싸우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당당하게 나가지만 약한 사람을 돕고자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다. 욕심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코델리아 좀 시켜 달라.’ (격한 웃음)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마지막에 기쁜 얘기를 들었죠.”

Q. 연출가에게 칭찬을 들었나요?

“연출가님도 그렇고, 몇몇 배우 분들도 ‘경헌아. 너에게 진짜 코델리아의 모습이 있구나’라고 하셨어요. 그동안 해왔던 악역의 인상이 사람들에게 강하게 남아 있었던 거 같아요. 추측해보건대 어떤 열정이나 욕구가 제 눈빛에서 강하게 나와서 그랬던 거 같아요.”

“이제는 그런 요소가 많이 빠졌어요. 열정이나 욕구가 욕심이나 전투적인 자세로 변하지 않도록 많이 노력하고 있거든요. 어렸을 때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많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저를 방해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거 같아요.”

“말씀처럼 ‘기린의 뿔’ 장옥정은 관점에 따라서 악녀가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역할을 맡는 순간에는 그 역이 악역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Q. 코델리아는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는 리어왕에게 구걸하지 않는 눈과 구걸하지 않는 혀를 언급해요. 세상 기준에 반(反)하는 예술이 자연스레 떠오르죠. 배우로서 그간 많은 타협의 순간을 만났을 듯해요. 어떤 고난을 만났고, 또 그 순간을 어떻게 해쳐나갔나요?

“타협은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한다는 의미잖아요? 어렸을 때의 타협은 이익이나 편리함을 위해서 신념을 버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갈수록 어떤 것에 대한 저의 신념과 판단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배워가는 거 같아요.”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주장 하던 때가 요즘은 그립기도 해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건 분명 삶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니까요. 하지만 그 신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었을 때는 정말 위험할 수도 있겠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방송국에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제가 추구하는 분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어요. 분명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속상하고 괴로웠죠. 하지만 어느 순간 ‘장르의 특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Q. 장르의 특성이 뭔가요?

“아침 드라마에서는 아침 드라마 연기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침 드라마는 주로 어머니들께서 설거지 중간 보시잖아요. 잠깐 보더라도 인물의 감정이 전달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배우는 작품에 따라 감독님과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스타일에 맞게 언제든 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죠. 배우에게 유연함이 있다면 큰 장점으로 작용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연극 무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반경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만 한정하는 배우도 많아요. 옳은 것과 그른 것의 판단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죠. 앞으로도 영원할 타협의 기로에서 연극은 언제나 강경헌의 선택으로 남을지 알고 싶어요.

“저는 세 장르가 다 좋아요. 연극은 같은 작품을 무한 반복하잖아요. 도저히 찾을 수 없던 답을 반복 속에서 찾을 때가 많아요. 그 순간이 참 재밌어요. 물론 연기가 안 될 때도 있죠. 무거운 짐을 꾸역꾸역 지고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빨리 공연이 끝나길 바라고요.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나면 좋았던 기억만 남으니까요. 더불어 꼭 맞다고 할 순 없지만 영화는 섬세해야 하고, (텔레비전) 드라마는 순발력이 필요해요. 아직까진 전부 재밌게 하고 있어요.”

Q. 인생의 연극이 궁금해요.

“인생의 연극? 그게 뭐예요?”

Q. 본인이 공연한 연극 중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작품이요. 아니면 배우가 미래에 출연하고 싶은 작품도 인생의 연극이 아닐까 싶어요. 무엇이든 좋아요.

“어렸을 때 연극 ‘리타 길들이기’ 리타를 했어요. 21살 때 한 번 했고, 23살 때 한 번 했던 거 같아요. 21살 때는 학교 워크숍에서 했고, 23살 때는 충청남도 천안 작은 극장에서 했어요. 2년 사이에 해석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지금도 가끔 생각해요. ‘나이를 먹어가고, 세월을 살아간다는 게 배우에겐 참 좋은 것이구나.’ 리타를 다시 한다면 지금의 강경헌은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낼 수 있을지 궁금해요.”

▶[What If②]로 이어집니다.
[What If①] ‘리어왕’ 강경헌, 욕심과 열정의 간극에서 (기사링크)
[What If②] 강경헌,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연기 장인 (기사링크)

기획: 김강유
진행: 김강유, 김치윤, 윤호준
인터뷰: 김영재 기자
촬영: 윤호준 bnt포토그래퍼
스타일링: 유어툴즈 최미선 디렉터, 이슬기 디렉터
의상: 레이즈(셔츠원피스, 니트, 쇼츠), 파오다일(액세서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블랙롱드레스)
헤어: 박호준헤어 주니 원장
메이크업: 뷰티르샤 이은경 아티스트
장소: bnt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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