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 빙상 새역사 쓴 흑인 여성..그 뒤엔 한국인 스승 있었다

이동수 입력 2017. 12. 17. 17:54 수정 2017. 12. 1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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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여성 첫 '美 쇼트트랙 국대' / 한국 여자 계주 2연패 주역 김윤미, 2002년 태극마크 반납 美로 유학길 / DSC서 코치로 활약.. 바이나와 조우 / 金, 지도 아래 美 차세대 선수 성장.. 대표선발전서 선배 제치고 평창行
17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는 미국 스케이트의 새로운 역사가 작성됐다. 가나 출신의 마메이 바이니(17)가 쇼트트랙 여자 500m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 스케이트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선발됐기 때문이다. 벽을 뛰어넘은 바이니의 쾌거를 같이 만든 이가 ‘한국 빙상의 신화’ 김윤미(37)다. 바이니는 그가 2007년부터 가르친 수제자이기 때문이다.
환호 마메이 바이니가 17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미국 쇼트트랙 여자 500m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AP연합뉴스

중장년층이라면 1990년대 ‘국민 여동생’ 김윤미를 잊을 수 없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 만 13세에 불과했던 김윤미는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 나섰다. 중국에 리드당하며 골인까지 세 바퀴도 안 남은 절박한 상황, 김윤미가 폭발적인 스피드로 중국 선수를 따라잡았고 ‘쇼트트랙 전설’ 전이경(41)의 등을 밀어줬다. 전이경은 곧바로 인코스로 파고들며 역전에 성공했고, 마지막 주자 김소희(41)가 끝까지 선두를 지켜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윤미가 역대 최연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장면으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진기록이다. 김윤미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도 전이경, 안상미(38), 원혜경(38) 등 한국이 배출한 쇼트트랙 스타들과 함께 계주 3000m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최강 전력을 자랑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까지 이어진 여자 계주 4연패의 출발점에는 김윤미가 서 있었던 셈이다.
`한국 빙상의 신화` 김윤미.

김윤미와 바이니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윤미는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2001년 은퇴를 선언했으나 대표팀의 요청으로 8개월 만에 다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스트레스와 체력 부담을 이기지 못해 결국 태극마크를 반납했고, 연세대 졸업 후 200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메릴랜드주의 타우슨대에 코치응급처치(Athletic Training) 전공으로 입학했고 동시에 락빌 지역의 스피드스케이팅 클럽 ‘리딩 에지(Leading Edge)’팀의 코치를 맡아 빙판에 복귀했다. 김윤미가 이끈 리딩 에지는 2006년 뉴욕에서 열린 로체스터 쇼트트랙 국제대회 유소년 부문에서 메달을 휩쓸며 전성기를 맞았다. 바이니와 운명적인 조우를 한 것 또한 이때다. 바이니는 2010년 김윤미를 따라 레스턴 지역의 도미니언 스피드스케이팅 클럽(DSC)으로 적을 옮겨 사제간의 인연을 이어갔다. DSC 관계자는 “당시 바이니는 김 코치를 만나고 정말 뛸 듯이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동네 스케이팅 클럽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지도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바이니는 5살 때 가나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매일같이 가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먹이던 꼬마 바이니는 그해 말 그대로 ‘인생 첫 빙판’을 접했다.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레스턴 지역을 지나가던 중 ‘이번 가을은 스케이트를 배워 보세요’라고 적힌 광고판을 봤고 아버지의 권유로 바로 입문하게 됐다. 아버지 크웨쿠 바이니는 “가나에서 차가운 건 맥주밖에 없었다. 바이니가 넓은 얼음판을 처음으로 본 날이다”고 돌아봤다.


바이니는 원래 피겨를 배우려 했으나 입문 당시 “힘이 좋으니 쇼트트랙을 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바로 종목을 바꿨다. 이후 김윤미를 만나 꽃을 피웠다. ‘스케이트’라는 단어도 알지 못했던 바이니는 김윤미의 지도 아래 2016∼2017 쇼트트랙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미 주니어 선수가 세계선수권 메달을 목에 건 것은 1996년도 이후 처음이었다. 이에 신동으로 명성을 얻은 바이니는 ‘미국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목해야 할 100가지 이야기’(미 대표팀 홈페이지), 각종 외신 등에 소개되며 차세대 쇼트트랙 선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17세에 불과한 바이니가 이미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이거나 유경험자인 라나 게링(27), 제시카 쿠어만(34), 캐서린 로이터(29)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이유다.

김윤미는 지난 11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바이니가 나를 찾아준 게 고맙고 반드시 평창에 발을 디뎌 쇼트트랙의 텃밭인 한국에서 빛나는 결실을 거두고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바이니가 이날 평창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김윤미의 의지는 현실이 됐다. 미 쇼트트랙 역사를 새로 쓴 김윤미와 바이니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지 주목된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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