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노진호의 이나불?] 아쉬움 남긴 KBS '더 유닛'의 자기부정

노진호 2017. 10. 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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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하기 논란 일으켰던 KBS '더 유닛'
애초 취지와 달리 연습생 대거 출연
실력 부족한 신인 배우도 합격
기회 다시 잡은 절박함에 대한 무시
※[노진호의 이나불?]은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줄임말입니다. 메일, 댓글, 중앙일보 ‘노진호’ 기자페이지로 의견 주시면 고민하겠습니다. 이 코너는 중앙일보 문화부 페이스북 계정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BS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 [사진 KBS]
지난 28일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이 처음 방송됐다. '더 유닛'은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란 설명에서 알 수 있듯 데뷔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아이돌에게 기회를 줘 다시 데뷔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이다. 비, 현아, 황치열 등 6명의 뮤지션이 '선배군단'이란 이름으로 심사위원을 맡아 도전자 중 누구를 남길지 결정한다. 판정단으로 참여한 일반인 중 90%가 찬성할 경우에는 심사위원 결정과는 상관없이 살아남는다.
'더 유닛'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따라하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프로그램이다. 시청자 투표 등으로 101명 연습생 중 11명을 뽑은 음악채널 Mnet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연이어 '잭팟'을 터뜨리자 KBS가 들고나온 프로그램이 '더 유닛'이었기 때문이다. 따라하기 논란이 일 때마다 KBS 측은 "트렌드를 따라갈 뿐 베끼기는 아니다"며 "특히 '한 번 데뷔했던 아이돌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더 유닛만의 특별한 색깔이 있다"는 취지로 해명해왔다.
KBS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 [사진 KBS]
첫 방송 후 '더 유닛'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심사위원들이 자신을 소개하고 각오를 밝힌 뒤 보이지 않는 가상 전원 스위치를 누르는 등 전체적으로 편집이 촌스러웠고, Mnet '슈퍼스타K', SBS 'K팝 스타' 등에서 숱하게 봐왔던 평가 방식, 즉 참가자가 끼를 보여주면 앞의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참가자를 남길지 탈락시킬지 결정하는 등 전개 자체도 식상했다. 하지만 결국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 부분은 '더 유닛'의 자기부정이었다.

"더 유닛은 아티스트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번의 실패를 맛본 사람들에게 다시금 기회와 여건을 줘서 본인의 능력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무대다." 이날 비가 방송에서 했던 얘기였다. 이 얘기가 부정 당하는 데에는 정확히 '7분 40초'가 걸렸다. 첫 참가자부터 데뷔 3개월 차인 걸그룹 아이돌 '굿데이'였기 때문이다. 굿데이는 "모든 분들에게 (굿데이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해서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패를 경험한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렇게 처음부터 어긋났다.

KBS '더 유닛' [KBS]
더욱 압권은 아이돌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신인배우 이정하의 등장이었다. 이정하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춤을 보여주긴 했지만 '학예회' 수준이었기에,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좋은 얘기만 해왔던 비도 "솔직히 정말 실력이 부족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정하는 "못 하는데 이상하게 좋다"는 이유로 결국 살아남았다. 총 90여 기획사에서 500여명의 아이돌이 '더 유닛'에 참가했다. 그만큼 절실한 아이돌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 이들이 절실함 없이 준비도 안 된 연습생이 명확한 이유도 없이 살아남는 모습을 보면 무엇을 느낄까.
이날 출연한 '빅스타'는 2012년 데뷔한 아이돌이다. 2015년부터는 제대로 된 활동도 하지 못해왔다. "회사에 '우리도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들은 이날 방송에서 김세정 '꽃길'에 맞춰 자신들이 만든 안무를 추며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현아 등 선배군단 일부는 이들을 보며 눈물을 보였고, 비는 "이런 친구에게 기회를 주려고 더 유닛이라는 게 있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결국 '빅스타' 멤버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KBS '더 유닛'에 출연한 아이돌 '빅스타'[사진 KBS]
앞으로 '더 유닛'이 더욱 중심을 둬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같은 장면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실력을 갖추고 데뷔했지만 우리 모두 그렇듯 아이돌 또한 세상사 쉽지 않은 법. 결국 실력대로, 뜻대로 풀리지 않아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이 다시 우뚝 서고, 부당했던 지난 세월에 보기 좋게 웃음 짓는 모습 말이다.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해 주목 받은 아이돌그룹 '뉴이스트W'의 팬들도 그들의 실력 뿐 아니라 지난 8년 간의 고생을 알기에 농도 짙은 팬심을 보여주고 있다. 취지에 맞지 않는 일부 참가자와 이들을 대하는 프로그램의 방식이 어렵게 다시 기회를 받은 이들의 절실함을 왜곡하거나 무시하게 해선 안 된다. '더 유닛'의 부제가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라는 걸 제작진이 다시 새겨야할 것 같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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