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그맘' 인공지능이라더니 조선시대 현모양처로 묘사

김향미 기자 2017. 10. 1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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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MBC 드라마, 신선한 소재 출발…내용은 성 고정관념 그대로 대변
ㆍ치맛바람 등 엄마들 세계 희화화

MBC 예능 드라마 <보그맘>에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보그맘’은 청소나 빨래·요리를 완벽하게 해낸다. MBC 제공

MBC 금요 드라마 <보그맘>에는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로봇을 뜻하는 ‘휴머노이드(humanoid)’가 등장한다. “인공지능(AI)을 말하는 시대니 이런 유의 드라마가 나올 법도 하다”는 시청자 게시판 의견처럼 <보그맘>은 AI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일상에 들어온다는 설정 때문에 방영 초기 관심을 받았다. 드라마는 극중 천재 로봇 개발자인 최고봉 박사(양동근)가 7년 전 아이를 낳자마자 죽은 아내를 모티브로 AI 휴머노이드 ‘보그맘’(박한별)을 제작하고 보그맘이 청담동 럭셔리 유치원 ‘버킹검 유치원’에 입성해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았다. 이 드라마가 시대의 고민과 조응하는 점은 ‘과연 보그맘이 엄마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극중 보그맘은 청소와 빨래, 요리에서 높은 숙련도를 보여준다. 아들 최율(조연호)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놀아준다. 남편의 일정을 정리해두고 잊지 않게끔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아들 친구들이 놀러왔을 땐 맛있는 음식을 내주고 아이들이 집을 더럽혀도 나무라지 않는다. 유치원에 가서는 교통정리며 구연동화도 전문가답게 해낸다. 보그맘은 배터리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인간 엄마보다 훌륭하게 해낼 것처럼 보인다.

‘완벽한 현모양처’ 보그맘. 하지만 이 같은 설정은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보그맘은 엄마에게 로봇처럼 많은 일을, 완벽하게 해낼 것을 요구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이들을 돌보다 갑작스레 방전 위기에 놓였던 보그맘이 “아이들을 돌보는 게 이렇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고된 가사노동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 드라마는 보그맘처럼 완벽한 엄마를 요구하는 사회를 풍자한다기보다는 보그맘을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더 치중한다.

또 극중 최고봉의 친한 동생인 한영철(최정원)은 줄곧 “남자는 이래야 돼”라는 대사를 남발한다. 한영철과 교감이 많은 어린 최율은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해” “남자는 울면 안돼”와 같은 말로 ‘의젓한 아이’임을 보여준다. 한 시청자는 게시판에 “남자아이니 울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라고 대사를 한 남자 어린이 역에게도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는 대사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AI 휴머노이드의 등장이라는 소재는 신선한데, 그 안에서 성역할 고정관념을 그대로 대변하는 고리타분한 전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설정 자체를 풍자로 보기엔, 극적 장치가 부족하다. 극중에서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드라마는 ‘예능’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럭셔리 유치원 엄마들의 치맛바람, 허세, 사치 등을 꼬집는 사회 풍자가 한 축을 담당한다. 극중 국회의원 며느리 도도혜(아이비), 명품숍 사장 부티나(최여진), 연예인 출신 파워블로거 구설수지(황보라), 유기농 주스 체인 CEO 유귀남(정이랑) 등은 보그맘을 골탕먹이려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오히려 매 순간 당황하지 않는 보그맘에게 이들이 당하게 되는데, 이 에피소드들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첫회 2.7%(닐슨코리아)로 시작한 시청률을 최근 5회에서 4.6%까지 끌어올린 데는 이런 코믹한 설정과 풍자가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다.

새로운 소재를 도입해 발랄한 풍자를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대상이 지극히 전통적 고정관념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무척 아쉽다. 성역할의 고정관념에 그대로 사로잡힌 캐릭터, 게다가 이 드라마의 풍자가 향하는 곳은 희화화된 여성들의 세계일 뿐이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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