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워도 듣게 되는,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노래

윤태호 입력 2017. 9. 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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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5년, <더 넥스트 데이> 부터 유작 <블랙스타> 까지

[오마이뉴스 글:윤태호, 편집:김미선]

지난 8월에 열린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소개된 다큐멘터리 <데이빗 보위 : 지기 스타더스트 마지막 날들(David Bowie: The Last Five Years)>은 아직 보위의 죽음이 낯선 팬들의 먹먹한 마음을 다시 한 번 흔들어 놓았다. 그중 한 명이었던 필자는 더 많은 공연 영상은 물론 그가 출연한 영화까지 섭렵했으며 SNS에서 보위라는 키워드로 연대감이 형성된 이른바 '랜선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허전함을 달랬다. 그리고 눈을 감은 순간까지 편안함을 거부하고 집요한 탐구를 이어간 '스타맨'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5년을 다시 돌아봤다.

 다큐 < David Bowie: The Last Five Years >의 한 장면
ⓒ 데이비드 보위
I. 2011-2013 : The Next Day

보위는 자신의 66번째 생일인 2013년 1월 8일, 아무 예고도 없이 신곡 'Where Are We Now?'를 발표했다.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보위의 신곡을 접한 세계는 떠들썩했다. 신곡은 27개국 아이튠스 차트 1위에 올랐으며 2개월 뒤 새 앨범 < The Next Day >가 출시된다는 소식은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총 1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친 '리얼리티 투어(A Reality Tour)' 중에 심장질환을 겪은 보위는 2003년 < Reality > 이후 단 한 장의 정규 앨범도 발표하지 않았었다. 

보위의 시계는 생각보다 오래 멈춰 있었다. 2010년 '리얼리티 투어' 기록이 담긴 라이브 앨범이 뒤늦게 출시된 이후에도 은퇴설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미 수년간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와 연락해 온 보위는 2010년 말부터 본격적인 창작을 재개했다.

앨범 작업은 2011년부터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당시 작업을 거절했던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에 의해 정보가 누설되는 해프닝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보위 같은 거물이 이렇게까지 은밀하게 앨범을 준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레코딩이 마무리될 즈음 보위는 투어는 물론 적극적인 프로모션 활동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위가 10년 만에 발표한 앨범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화제를 모은 < The Next Day >를 향한 반응은 뜨거웠다. 앨범은 발매 첫 주에 영국에서만 10만 장 가깝게 판매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대표작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 Heroes > 커버에 흰 사각형을 덧씌운 것도 예상치 못한 파격이었다. 평단은 "로큰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컴백", "대담하고 혁신적인 앨범" 같은 호평으로 보위의 컴백을 축하했으며 유명 뮤지션들의 찬사도 줄을 이었다.

 ▲ 10년 만에 발표한 앨범 ‘더 넥스트 데이’
ⓒ Sony Music
베를린의 경관이 더해진 쓸쓸하고 회고적인 발라드 'Where Are We Now?'는 첫 싱글로 손색없으며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흥미롭다. 보위가 떠나던 날 한없이 반복해서 듣던 이 곡은 전에 느낄 수 없던 황량한 기운으로 인해 더 무겁고 슬픈 곡이 되었다. 

강렬하고 날카로운 오프닝 'The Next Day'는 록스타 보위의 컴백을 알렸다. 풍자적 묘사가 돋보인 뮤직비디오는 기독교 단체들의 반발을 사며 논쟁을 부르기도 했다. 80년대가 연상되는 두 번째 싱글 'The Stars(Are Out Tonight)'의 뮤직비디오는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의 열연이 화제가 되었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 곡은 2014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록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다.

 ▲ 데이비드 보위와 틸다 스윈튼
ⓒ Sony Music
'Valentine`s Day'에는 2008년 밸런타인데이에 벌어진 노던 일리노이 대학 총기 난사 사건의 기억, 무분별한 총기 허용에 대한 우려와 우회적 비판이 담겼다. 루이뷔통 광고에서 노래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던 'I'd Rather Be High'는 전쟁을 겪은 군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세대와 매끄럽게 소통하는 보위의 진가가 드러나는 매력적인 곡들이다.

보위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안정을 추구하지 않았다. 심오한 노랫말, 강렬하고 도전적인 사운드로 명료하게 비전을 제시했다. 한편, 대대적인 찬사를 받은 앨범은 그해 11월 새로운 곡과 리믹스 트랙, 뮤직비디오로 구성된 컬렉터스 에디션 < The Next Day Extra >의 발매로 이어졌다.

II. 2014 : Nothing Has Changed

< The Next Day > 이후 틈틈이 새로운 곡을 썼던 보위는 2014년 11월 지난 50년을 총망라한 컴필레이션 < Nothing Has Changed >를 발표한다. 특히 1964년 싱글 'Liza Jane'부터 이 앨범에서 처음 공개한 신곡 'Sue (Or in a Season of Crime)'까지 59곡을 역순으로 수록한 디럭스 에디션은 매우 뛰어난 구성으로 오랜 팬들까지 흡족하게 했다. 마리아 슈나이더 오케스트라(Maria Schneider Orchestra)와의 협력을 통해 완성한 7분대의 신곡 'Sue'에서 보위는 다시 한 번 집요한 실험가의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덧 60대 중반을 넘겼지만 10년 전보다 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 완벽한 컴필레이션 앨범 [Nothing Has Changed]
ⓒ Sony Music
III. 2015-2016 : Blackstar & Lazarus

2015년 1월 보위는 토니 비스콘티에게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알리게 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할 말을 잃은 토니를 보며 보위는 울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으나 흐르는 눈물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위는 의욕적으로 새 앨범 작업 이야기를 시작했고, 다음날부터 바로 레코딩을 하게 되었다.

보위는 더 진지하고 도전적인 모습으로 작업에 임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라이브처럼 연주했다. 애초에 일방적인 지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보위는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더 좋은 방향을 모색했고, 계획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도 섣불리 중단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거기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보위는 레코딩 기간 내내 매우 행복해 보였다. 생기가 넘쳤고 늘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마치 암을 정복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보컬 파트를 빠르게 끝마칠 정도로 집중력 또한 뛰어났다. 거기에 더해 오랜 꿈이었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제작도 준비했다. <라자루스>(Lazarus)라는 제목의 뮤지컬은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지구에서 떨어진 사나이>(The Man Who Fell to Earth)를 바탕으로 완성했고, 아쉽게도 마지막 작업으로 남게 되었다.

새 앨범의 첫 싱글 'Blackstar'가 공개된 11월, 보위는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두 개의 다른 곡이 멋지게 연결된 10분에 가까운 대곡 'Blackstar'는 'Where Are We Now?'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으나 놀라움을 안겼다. 12월 초에는 뮤지컬 <라자루스>의 첫 공연이 열렸는데 보위는 캐스트와 함께 무대에 올라 성원에 화답했다.

 ▲ 보위의 유작이 된 [Blackstar]
ⓒ Sony Music
앨범 < Blackstar >가 발매된 것은 2016년 1월 8일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월 10일, 갑작스럽게 보위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었다. 전 세계는 깊은 충격에 빠졌고 불과 3일 전에 공개된 마지막 뮤직비디오 'Lazarus'가 팬들을 더 아프게 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충격이 매우 컸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온종일 망연자실하다 집에 돌아오니, 택배 하나가 배달되어 있었다. 배송 지연으로 주말을 넘기고 받은 택배는 아이러니하게도 보위의 새 앨범 < Blackstar >였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떠난 그를 그리워하며, 2016년 내내 이 앨범을 들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예견했던 보위는 'Lazarus'를 비롯한 여러 곡에 자기 생각과 심경을 담아냈는데, 그 사실을 알았던 토니는 < Blackstar >를 최고의 앨범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영국, 미국 차트 모두 정상에 오른 < Blackstar >는 여러 매체에서 2016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앨범 < Blackstar >는 보위가 죽지 않았어도 완벽한 올해의 앨범이었다. 기괴한 톱 트랙 'Blackstar', 재녹음 버전인데도 다른 곡보다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Sue (Or in a Season of Crime)', 아름답고 완벽한 피날레인 'I Can't Give Everything Away' 등 불안과 혼란이 혼재된 일곱 개의 노래는 지금껏 상상할 수 없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고통스러워도 재생을 멈출 수 없는 'Lazarus'는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곡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lazarus'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데이비드 보위
한편, 프로듀서 헨리 헤이(Henry Hey)는 뮤지컬 앨범 녹음 직전에 보위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앨범 녹음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모인 캐스트와 밴드 멤버들은 보위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스튜디오에 모인 이들은 뮤지컬 앨범을 원했던 그의 뜻을 되새기며 녹음을 진행했다. 서로를 위로하며 깊은 감정을 담아 노래했고, 아름다운 사운드트랙을 완성했다. 앨범은 10월에 발매되었고, 보위의 새로운 노래 세 곡을 수록한 보너스 CD는 올해 1월 < No Plan >이라는 EP로 발매되었다.

토니는 보위를 마지막 순간까지 낙천적인 동료로 기억했다. 보위는 토니와 페이스타임으로 마지막 통화를 할 때 새로운 치료법과 더불어 다음 앨범 작업에 관해 이야기했다. 늘 같은 곳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보위는 삶의 빛이 점점 희미해지는 순간까지 음악을 놓지 않았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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