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녀는 시아버지 귀에 끓는 납을 부었나

이정희 입력 2017. 8. 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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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맥베스 부인, 욕망의 주체로 다시 태어나다 <레이디 맥베스>

[오마이뉴스 글:이정희, 편집:유지영]

주인공은 맥베스였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맥베스는 그냥 귀가 얇은 조절장애를 가진 남자처럼 여겨진다. 3명의 마녀와 아내, 예언을 빌려 그를 충동하는 마녀도 마녀지만, 남편 맥베스의 욕망에 엔진을 달고, 연료를 들이붓는 역할의 아내를 빼놓고서 이 작품의 악행은 설명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운명에 휘말린 맥베스를 나약한 인간으로 여기는 반면, 그의 아내 레이디 맥베스를 최종 보스마냥 악행의 주체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정작 원작 레이디 맥베스(셰익스피어)는 남편의 왕좌를 열정적으로 지키려 하다가 결국 죄책감에 미쳐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버리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결말과 상관없이 <레이디 맥베스>는 '욕망의 화신'의 대명사가 됐다. 그렇게 욕망에 주도적으로 자신을 내맡긴 여성의 대명사가 된 그녀는 19세기라는 영국을 배경으로 새롭게 해석되어 등장한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이전에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이 있었다. 70살의 시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마을 광장에서 처형된 젊은 여성. 시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귀에 끓는 납을 부은 이 엽기적인 실화가 이 영화를 잉태했다.

 레이디 맥베스
ⓒ 씨네 룩스
시아버지를 죽인 젊은 며느리의 도발

도대체 왜 젊은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죽여야 했을까? 거기엔 아직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전근대 사회 속의 여성의 존재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자신이 가진 권력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편을 왕으로 만들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도 있고, 역사 속 다수의 여왕들이 있었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편이 속한 사회적 계층의 이름표에 의해 그 값이 매겨졌다.

<레이디 맥베스>는 솜털이 뽀송뽀송해 보이는 10대 소녀티가 남은 캐서린(플로렌스 퓨 분)의 결혼식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전에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 결혼으로 인해 그녀는 이제 지주 집안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아버지뻘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남편과의 자식 생산. 하지만 영화는 결국 젊은 아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첫날 밤 증명한다.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없는 며느리, 몸을 옥죄는 옷을 입고 앉아서 조는 거 말고는 할 일 없는 꽃다운 나이의 그녀. 사고로 시아버지와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지주 집안 며느리로 하인들 단속에 나섰던 그녀의 눈에 누군가 매료된다.

씨받이로 들인 젊은 며느리가 불능인 남편 대신 젊은 하인과 바람나는 설정은 <전설의 고향>을 비롯한 전래 괴담의 단골 소재였다. 물론 이들 역시 '사실'에 근거한 전래 설화였다. 양반 가문의 전통과 혈연적 승계를 위해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는 한국을 비롯해 원작의 배경이 된 러시아, 영화의 배경인 영국 등 세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영화 속 캐서린이 살았던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빅토리아 여왕의 나라'였고, 시민 혁명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가 갖춰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골 마을 지주의 아내이자 딸인 캐서린에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를 작황도 좋지 않은 밭과 돈 몇 푼에 사온 시아버지는 그녀에게 지주 집안의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강요한다.

열녀문의 희생 대신, 권력의 화신이 된

 레이디 맥베스
ⓒ 씨네 룩스
21세기에 재연된 레이디 맥베스의 여주인공 캐서린은 괴담의 주인공이 되었던 그녀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불구인 남편, 그럼에도 생산을 요구하고 절도있는 예절을 요구하는 시아버지, 그런 숨 막히는 집안 분위기의 틈에서 그녀는 거침없이 욕망의 일탈을 추구한다. 그 욕망은 연인과의 밀애를 위한 수단들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가는 것으로 나아간다.

전근대 사회에서의 여성의 일탈은 곧 부도덕이란 낙인과 함께 가장 엄격한 처단의 대상이 됐다. 남성의 혈연에 의해 계승되는 사회에서, 그 혈연의 승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여성의 순결성이야말로 그 제도를 가능케 해주는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성과 여성의 성적 욕망은 중요치 않는다. 영화는 바로 그런 배제된 여성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운다. 19세기의 <마담 보바리>의 성적인 일탈이 곧 사회적으로 억눌린 여성의 해방을 상징하듯, <레이디 맥베스> 역시 캐서린의 욕망을 직시한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마담 보바리>를 비롯해, 원작 <레이디 맥베스>, 숱한 '열녀문'이란 허상 속에 스러져간 여성 잔혹사 속 주인공들이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채, 사랑이란 멍에를 짚어지고 스러져 간 것과는 다르다. 캐서린은 자신의 욕망을 지켜내기 위해 '남성'으로 상징되는 권력'을 쟁탈한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랑'의 순교자가 되는 대신, 욕망의 대상조차도 자신이 쟁탈한 권력을 위해 거침없이 제물로 삼는다. 이는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뜻한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그 소외된 여성의 성과 욕망에 대해 직시한다. 팔려온 소녀의 정당한 자기 욕망이 왜곡되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결국 그녀의 부당한 대우는 '권력'을 가진 남성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영화는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 반작용으로 캐서린은 자신의 권력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한다. 늘 그 욕망의 끝에서 파멸하고야 마는 여성들이 익숙했던 우리에게, 새로운 권력 주체 캐서린의 존재는 낯설지만, 던져봐야 할 질문이 된다.

 레이디 맥베스
ⓒ 씨네 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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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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