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류성현 "류준열 사투리, 제가 가르쳤죠" [인터뷰]

권남영 기자 2017. 8. 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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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관객을 울린 광주 대학생 재식(류준열)의 한 마디. 영화 ‘택시운전사’가 전한 광주의 아픔은 맛깔스런 사투리를 타고 더 깊이 스며들었다. 배우들의 부단한 노력, 그리고 그 뒤에는 광주 출신 배우 류성현(46)이 있었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는 이야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의 실화를 다뤘다.

광주 시민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유창한 전라도 사투리 구사는 필수였다. 광주 택시운전사 류기사 역의 류성현이 전담해 사투리를 가르쳤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21년째 배우 생활을 해오면서 종종 작품 속 사투리 교육을 맡았다. ‘내부자들’(2015)의 이병헌에게 전라도 사투리를 가르친 이도 그였다.

‘택시운전사’ 사투리 티칭을 담당해 달라는 의뢰는 특히 반가웠다. 어릴 적 5·18을 직접 겪었던 그에게 이 영화가 지닌 의미는 남달랐다. 당초 사투리 선생님으로만 참여했으나 운 좋게 배역까지 맡게 됐다. 만섭을 돕는 광주 택시운전사 네 사람 가운데 큰 키와 까무잡잡한 피부, 곱슬머리가 인상적이었던 바로 그 인물.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성현은 “‘택시운전사’는 주·조·단역을 막론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의 열정으로 탄생했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사투리 체크를 위해 촬영장에 상주했는데, (배우들이)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서 40도에 육박하는 열기를 견디면서도 누구 하나 찌푸리는 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송강호 선배는 촬영 없는 날에도 늘 현장에 나오셨어요. 계속 함께 웃어주시며 분위기를 다잡아주셨죠.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이 됐어요. 현장 분위기만으로도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죠. 그러다 보니 배우들도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투리 교육 과정에서 동료 배우들과 더 깊이 소통할 수 있었다. 류성현은 “유해진 형은 실제로 보면 굉장히 진지하시다. 충청도 분이라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어려워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을 열고 나를 믿어주시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사투리 우등생은 류준열이었다. “준열이는 한번 알려주면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이더라고요. 연기 집중력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낯가림이 좀 있는 편인데, 준열이는 초반부터 먼저 살갑게 다가와 줬어요. 친해지면 한없이 오픈마인드가 되는 스타일이더라고요(웃음). 언제든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은 배우에요.”

류성현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편견 없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5·18 소재의 영화니까 아프고 힘들 것이다’ 지레 겁먹기보다 그저 보고 느껴줬으면 한다고. “광주 시민들이 오늘날 민주주의를 자리 잡게 한 숨은 영웅이 아닐까요. 그들의 아픔과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백제예술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96년 데뷔한 류성현은 연극·뮤지컬 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을 오가며 꾸준히 연기해 왔다. 돈이나 유명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의지와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 그의 배우 인생에, 빛이 들기 시작했다.


류성현은 지난달 21일 폐막한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연기의 중력’(감독 정근웅)에서 호흡 맞춘 배우 오륭과 공동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데뷔 21년 만에 처음 받은 트로피였다.

“마냥 기쁘다기보다 ‘이게 뭐지? 이게 왜 나한테 오지?’ 얼떨떨해요.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죠. 주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축하를 해줘서 ‘내가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은 들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이 여운을 너무 오래 가져가진 않을 생각이에요.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천천히 나아가려고요. 그게 나다운 것 같아요.”

차기작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최재훈 감독의 ‘검객’, 이창렬 감독의 ‘굿바이 마이 파더’, 그리고 이준익 감독의 ‘변산’이다. 특히나 그가 인생의 ‘은인’으로 여기는 이준익 감독과의 작업은 자못 기대가 크다.

“이준익 감독님은 제가 연기를 계속 해도 되나 고민하던 시기에 기회를 주신 분이에요. ‘평양성’(2011)에서 신라군 백제 병사 역할을 맡겨 주셨죠. 그때 해주신 조언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이미 두 번의 기회는 지나갔으니, 남은 한 번의 기회를 꼭 잡으라고. 이제 와 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저의 은인이시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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