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열' 이준익 감독과 웃으며 전쟁하기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2017. 6. 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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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화 기대치가 높으면 상대적으로 개봉했을 때 실망이 큰 법인데, 그런(부정적인) 리뷰를 써줘 기대치를 낮춰줬어요.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아주 잘했어요.”

영화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뾰족한 위트를 실어 첫 마디를 날렸다. <박열>의 흥행을 낮게 점친 기자의 리뷰 기사에 대한 반응이었다. ‘공을 알아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반어법으로 인터뷰의 막을 열었다.

영화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익 감독은 편한 차림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비스듬히 앉아 담배를 연거푸 피우는 자태엔 스타 감독다운 자신감이 묻어났다.

“기대 반비례의 법칙이 있어.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지. 그게 내 인생의 철칙이기도 해요. <동주>의 흥행이 부담이었거든. 난 이번 영화에서 <동주>로부터 가장 멀리 가는 게 목표였어. 같은 걸 찍으면 영화를 왜 하겠어요? 그냥 <동주> 두 번 보지. 계속 같은 걸 찍으면 그게 감독이 망하는 길이죠.”

일리 있는 말이다. 자기복제만큼이나 큰 함정은 없으니 말이다. <동주>처럼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또 다른 인물 ‘박열’에 집중한 것은 그의 말처럼 유사한 기대감을 가진 관객들의 허를 찌르기 위함이었을까.

“이 영화는 박열(이제훈)을 그리는 게 목표가 아녜요. 박열은 그냥 수단일 뿐이지. 그를 통해서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란 존재를 더 인지하게 되고, 그 인지로 시대를 보는 관객의 프레임을 좀 더 넓히는 목적이 있는 거죠. 민족주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인 거잖아!”

그의 말처럼 <박열>은 다른 일제강점기 영화와 달리 밝은 톤을 유지하며 블랙코미디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일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독립 열사를 다루는 화법도 독특했다. 다만 이제훈, 최희서 등 배우들의 연기 톤이 통제되지 않아서 영화의 이런 미덕이 묻힌 게 함정이었다. 그럼에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 감독이다.

“만족감 200배지. 이제훈과 최희서가 가진 포텐이 터졌으니까. 감독이 배우를 콘트롤 할 수 있는 건 1%밖에 안 돼. 99%는 배우의 잠재력이 발현되는 거죠. 두 사람의 하모니와 앙상블이 기가 막히게 맞았잖아요? 이제훈의 연기력에 대한 만족도는 어마어마하게 높았지. 솔직히 이제훈의 영화 아니냐? 제목도 <박열>이니까. 그런데 사실 영화를 보면 후미코가 빛나는 장면이 더 많아. 신인인 최희서가 살아난 건 이제훈이 깔아줬기 때문이지. 이제훈도 개인적인 욕망이 있었을 텐데, 그걸 넘치지 않게 다 받아준 거예요. 존재감 없는 배우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누구 덕분이겠어?”

이 영화를 준비하는 데에 20여년이 걸렸다고 했다. 콘텐츠로 발굴한 뒤 <동주>의 히트를 계기로 투자도 이뤄진 거라는 설명이다.

영화 ‘박열’ 한 장면.

“<박열>은 내가 궁금해서 만든 영화지. 내가 보고싶었거든요. <아나키스트> 제작을 준비하면서 일제강점기 관련 책을 많이 봤는데 그 중 우리가 모르는 투사가 수만 명이란 걸 알게 됐어요. 특히 박열이란 인물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지. 대중은 식민지 시기를 바라보는 틀이 ‘일본인은 나쁜 놈, 우리는 피해자’라고 정해져 있는데, 이건 감정적인 거라 이성적인 논리가 더해져야 하거든. 그게 바로 고증이 필요한 이유야. 박열과 후미코가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를 고증하려면 일본인 시각에서 다룬 책이 더 중요할 거로 생각했죠. 야마다 쇼지가 쓴 후미코 평전과 아사히, 산케이 등 진보, 극우 신문들도 참고했지. 그래서 영화에 보면 내각의 대신 이름도 그대로 실은 거야. 우리는 그동안 일본 제국주의를 대상으로만 여겼지만, 그 내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죠. 그걸 내가 최초로 그린 거야.”

그의 자부심이 <박열>에 대한 사랑으로 번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사 후 재밌었다는 반응과 감정 과잉이라는 반응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도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나도 시사 후 반응들을 보는데 100명 중 10~20명은 영화가 세서 여운이 적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더라고. 식민지 관련 영화의 틀을 이렇게 깰 수 있을까에 대한 놀라운 반응도 있었고. 혁명을 얘기하면서 사랑을 느꼈다는 반응도 있었죠.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는 건 굉장히 좋은 거잖아요.”

마지막으로 그는 동아시아적인 역사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런 시각으로 <박열>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몇 번이고 영화를 다시 보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더불어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혹은 한번만 보고) 기사 쓰는 ‘뻘짓’은 자제하라며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농담을 더했다.

처음엔 그 기사로 덕을 봤다더니 나중엔 또 탓하는 그 태도가 흥미롭지 않은가. ‘수미쌍관(앞뒤가 같은) 화법이 아니라 재밌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결국엔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이 감독이었다. 인터뷰 전쟁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박열>은 28일 개봉.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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