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 개그맨 ○○○입니다"..1년만에 끝나는 일장춘몽인가

2017. 5. 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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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찾사', 저조한 시청률로 31일 잠정폐지
지난해 뽑힌 신인들 앞길 막막한데도
SBS "원하면 계약해지" 무책임한 태도

[한겨레]

지난해 선발된 <에스비에스> 16기 공채 개그맨들은 ‘웃기는 개그맨’으로 인정받을 날을 꿈꾸며 땀 흘려왔다. 그러나 31일 방송을 끝으로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잠정 폐지되면서 ‘웃길 무대’를 잃게 됐다. 공채를 뽑아놓고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방송사의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말도 안 돼.”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웃기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길게는 10년간 공채시험에 도전해 꿈을 이뤘다. “공채 개그맨 ○○○입니다”를 처음으로 입 밖에 냈던 그 순간의 감동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지난 1년은 일장춘몽이었던 것일까.

<에스비에스>(SBS)가 31일 방송을 끝으로 공개 코미디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을 잠정 폐지하면서 신인 개그맨들의 꿈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2.3%(가장 최근인 23일 방송 기준. 닐슨코리아 집계)의 저조한 시청률에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공채로 뽑은 신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에스비에스>는 개그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모집한다며 지난해 4월 공채 개그맨 13명을 선발했다. 총 지원자 800명. 61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이들은 지난 1년간 매일 <웃찾사> 전용 극장과 서울 등촌동 공개홀에 출근하며 웃길 준비를 하거나 내공을 쌓아왔다.

그러나 1년 만에 그 꿈이 깨졌다. 무대가 사라진 신인 개그맨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나”부터 “개그를 계속해야 할까”라는 원론적인 고민까지 하고 있다. 선배 개그맨들이나 인지도가 있는 개그맨들은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에 출연하거나 행사를 할 기회가 잦지만, 이제 갓 시작한 신인들은 다르다. 이들을 지켜보는 선배 개그맨들은 “행사라도 뛰려면 얼굴을 알려야 하는데, 이제 막 인지도를 쌓기 시작하는 때에 프로그램이 폐지되어 안타깝다”며 “<웃찾사> 폐지에 신인들이 가장 힘들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선배’인 이용식은 19일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 사옥 앞에서 <웃찾사> 폐지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하기도 했다. 공개코미디는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와 <개그콘서트>(한국방송2)가 있지만, 신인들이 아이디어만 갖고 무작정 다른 방송사를 찾아가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높다.

공채 계약기간이 남았지만 방송사가 책임져주지도 않는다. <에스비에스>는 신인 개그맨들과 2년 계약을 했고, 아직 1년이 남았다. 그러나 “다른 방송사에 시험을 쳐도 좋고, 원하면 계약을 해지해주겠다”는 ‘관용’을 베풀며 실상은 책임지지 않으려고 해 신인 개그맨들을 울린다. <에스비에스> 쪽은 “포맷 고민을 함께 하고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되면 재투입시킬 것”이라고 밝혔지만, 25일 마지막 녹화가 끝날 때까지 신인 개그맨들한테 포맷 상의 등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다시 돌아오는, 기약 없는 그날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인 개그맨들은 사실상 열정페이를 받으며 일해왔다. 공채에 선발된 뒤 계약금으로 평범한 직장인 한달 월급(초봉 기준) 정도의 금액을 받았고, 추가로 6개월 동안 차비 등의 명목으로 매달 40만원씩을 받은 게 전부다. 그 뒤로는 출연 여부에 따라 회당 출연료를 받았는데, 한달 꼬박 출연하면 150만원 남짓이었다. 토요일만 격주로 쉬었을 뿐, 다른 날엔 매일같이 방송사와 극장을 오가며 아이디어를 짜고 공연했다. 힘들어도 이들을 지탱한 건 “내가 개그맨이 되었다는 사실과 시청자들을 웃길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이 폐지될 거라는 상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신인 개그맨들은 대학로 무대를 알아보거나, <한국방송> 공채시험을 준비하는 등 막막한 현실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누군가는 개그의 꿈을 접고 일반 직장을 알아보기도 한다. <웃찾사> 마지막 녹화 이후 프로그램 출연 등 관련 일정이 잡혀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들 개그맨이 되려고 대학로 극단 등에서 오랜 세월 활동하며 여러 차례 도전 끝에 개그맨이 됐다. 경제적인 문제, 막막한 현실 등에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개그의 열정이 너무 뜨거워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남을 웃기고 싶다”, “개그맨으로 유명해져서 돈도 벌고 싶다”는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지 겨우 1년 만에 다시 무대를 잃은 그들은 웃음을 찾을 수 있을까.

개그를 아끼는 피디들과 선배 개그맨들은 “계약기간이 남은 신인들에 한해 남은 1년 동안은 월급으로 일정 금액을 주든, 다른 프로그램에 패널로라도 투입시키든 방송사가 공채를 뽑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25일 마지막 녹화가 끝난 뒤 제작진은 “빨리 새 포맷을 만들어서 다시 소집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안녕을 고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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