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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평(三視世評)] '김치녀·피임·졸혼'.. 터놓고 얘기하니 속시원하네

정리=채민기 기자 2017. 4.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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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토크쇼 '까칠남녀']
성차별 관련된 민감한 소재 과감히 다루며 솔직한 토론
교양·예능 적절히 결합해 재미
여성 시각 위주라는 비판도

EBS '까칠남녀'는 교육 방송이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깨뜨린다. '국내 최초의 젠더(gender) 토크쇼'를 표방하며 성차별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과감하게 무대에 올린다. 지난달 27일 첫 방송을 시작해 '김치녀'(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 피임, 졸혼(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따로 사는 것) 같은 주제를 다뤘다. 시청자 게시판에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드러내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소재를 공론화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는 기획 방향이 가장 큰 강점이다. '남자가 왜 여자보다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내야 하나' '여자는 왜 꼭 겨드랑이 털을 깎아야 하나' 같은 생활 밀착형 주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다룬다. 민망해서, 또는 사적 영역이란 이유로 진지한 토론 대상이 되기 어려웠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불편이나 억울함, 궁금증을 느껴봤을 법한 주제들이다. 터놓고 이야기해야 변화가 시작된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할 일이다.

'말 잔치'로만 끝나지 않도록 다양한 기법이 동원된다. 매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가상 인물의 방으로 출연자들이 초대된다. 빈방에 놓인 물건들을 단서로 '누구의 방'인지 탐정처럼 추측해가는 과정에 출연자들이 갖고 있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노출된다. 여자친구가 더치페이를 제안했을 때 남자친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카메라로 살펴보기도 한다. 어찌 보면 공익 성격이 강한 EBS라서 할 수 있는 방송이다. 일반 상업 방송이었다면 '시청률을 위해 젠더 이슈를 자극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 시달렸을 것이다.

실제 교육적 효과가 크다. 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하고도 사사로운 성차별 문제들을 주목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누나가 남동생에게 밥을 차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성차별적이다. 그렇다면 '남동생이 쓰레기 버리기나 밤늦게 귀가하는 누나 마중을 전담하는 것'도 성차별인가? 콘돔을 쓰지 않고 체외 사정으로 6개월간 성관계를 가진 여성 4명 중 3명은 임신과 낙태를 경험한다든가, 기혼 여성 낙태율이 미혼보다 2배 높다는 등 구체적 자료도 풍부하게 제시된다. 김윤덕 기자는 "이렇게 쉽고 재미나고 유익한 성교육이 또 있을까. 온 가족이 봐도 좋을 프로그램을 심야에 방송하니 아쉽다"고 했다.

11년간‘김치녀’를 만나왔다는 남성이‘까칠남녀’스튜디오에 나와 진행자 박미선(왼쪽)에게“소개팅에서 만난 여성이 머슴을 원하더라”는 경험담을 털어놓는 장면. 방송 화면에서 남성 출연자를 머슴처럼 한복 입은 모습으로 합성했다. /EBS

'까칠남녀'라는 제목과 달리 실제로는 여성 시각 위주라는 비판도 있다. 토론은 대개 남성 패널들이 실없는 소리를 하면 여성 패널들이 단체로 쏘아붙이는 분위기로 진행된다. 남성 패널은 에로 영화를 연출했던 봉만대 감독, 인터넷 매체 편집장 출신인 시사평론가 정영진, 단국대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가 고정 출연한다. 여성 패널은 성우 서유리, 페미니즘 작가 은하선이 고정 출연하고 여성학자 손희정·이현재가 번갈아 나온다. 자칫 험악해질 수 있는 토론 분위기를 유머와 입담으로 누그러뜨릴 수 있는 구성이다. 하지만 남성 출연자 중엔 남성 입장을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대변할 사람이 없는 반면, 여성 패널 중에는 '전문가'가 포함돼 있다. 진행자 박미선도 여성이기 때문에 숫자로도 여성이 우세다.

"남녀가 서로 대등하게 토론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면 남성 시청자들 반감이 오히려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최수현 기자) "여성이 더 큰 차별에 시달리는 현실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남성의 목소리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면 더 깊은 수준의 논의도 가능해질 것이다."(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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