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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민', 더 적나라한 실제 정치판 얘기는 불가능했나

듀나 입력 2017.04.21 14: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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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민’, 차라리 조금 더 과격하게 가면 어땠을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영화 <특별시민> 기자간담회에서 누군가가 배우들에게 극중 후보들 중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물었다. 각각의 대답이야 검색하면 나올 것인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질문 자체이다. 이 영화는 서울시장 후보들의 어두운 면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데, 영화 속 유권자들은 그 정보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건 대외 이미지와 조작된 정보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투표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간담회의 배우들은 실제 세계에서 곧 있을 투표를 독려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그게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특별시민>이 그리는 세계와 실제 정치판은 얼마나 유사할까? 그것은 일반 관객들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특별시민>의 유권자들과 마찬가지로 관객들 역시 정보로부터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하지만 <특별시민>의 세계가 일반적인 정치영화나 드라마의 익숙한 관습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은 말해도 될 것 같다. 교통사고, 마약 의혹, 살인과 같은 것들이 쓰이는 익숙한 방식을 보라. 물론 여기엔 ‘원본임이 분명하고 오직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USB 메모리’도 등장한다. 이 표면적인 익숙함은 영화의 신빙성을 조금씩 계속 갉아먹는다. 적어도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깊은 사정’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약해진다. <특별시민>은 필요이상으로 ‘장르화’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또다른 이유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정치 영화의 한계에 있다. 지금 이 나라의 구체적인 정치상황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 이건 꼭 한국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기도 하다. 빌 클린턴 시절 미국 대통령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꾸준히 나왔지만 정작 그 대통령들이 어느 당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작품들이 나온 건 비교적 최근이니까. 그러나 이유야 무엇이건 이런 상황은 문제가 된다.

조금 자세히 말해보자. 과연 막연한 일반론만으로 한국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나라에서 진보와 보수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사람들이 과연 진짜 진보이고 보수이며, 이들 단어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가 이들의 성격을 설명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이 나라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그 기묘한 뒤틀림을 제대로 담지 않고 영화를 위해 만든 허구를 그 자리에 대신 깐다면 당연히 영화는 나이브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구체적인 특별함이 날아가버리니 일반론으로 표면만을 건드리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쉽게 양비론과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극중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하시겠어요?”라는 스포츠 도박에나 어울릴 법한 질문에 나왔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관객들을 서울시장 선거의 세계로 인도하는 박경 캐릭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심은경이 연기하는 박경은 익숙한 인물이다. 천진난만한 이상주의를 품고 현실세계의 난장판에 뛰어들었다가 환멸을 느끼고 성장하는. 선례도 많아서 구축하기 쉬울 것도 같다. <프라이머리 컬러스>에서 에이드리언 레스터가 연기한 해리 버튼과 같은 인물을 떠올려보라.

하지만 막연한 정치 영화 장르 캐비넷 안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 같았던 이 인물을 한국에 넣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해리 버튼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주의자인 민주당 지지자처럼 보이고 그의 행동과 판단도 이 초기 설정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박경의 경우는 계속 설정을 의심하게 된다. 왜 세상을 아주 모르지 않을 이 젊은이는 현실세계라면 (구) 새누리당 소속이었을 이 닳아빠진 정치가 변종구에게 그렇게 이상적인 기대를 걸고 있는 걸까? 이 인물을 환멸로 몰고가는 과정이 영화에 충분한 낙차를 제공하는가? 도입부의 ‘청춘 콘서트’ 장면에서 박경이 변종구에게 ‘일침’을 가하는 장면을 믿을 수 없는 건 그 대사가 이상할 정도로 고루하고 생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이 선 위치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장르에 안주하고 정확한 현실을 담을 수 없다면 조금 더 과격하게 가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영화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재료들이 있다. 살인, 교통사고, 마약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박경이나 류혜영이 연기하는 임민선과 같은 사람들이 기존 이야기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는 캐릭터란 뜻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중장년 남자들로 구성된 알탕 카르텔’에서 벗어나 있고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무사히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들의 가치관도 그렇게 많이 공유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장르 정치 영화의 익숙한 길을 가느라 이들의 잠재적인 폭발력을 무시해버린다. 터지지 않는 폭탄을 보는 것처럼 갑갑한 것은 없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특별시민>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