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빵]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약촌오거리 사건'

이슈팀 서한길 기자 2017. 2.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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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왕 김꿀빵]

[머니투데이 이슈팀 서한길 기자] [[설명왕 김꿀빵]]

며칠 전 영화 '재심'이 개봉했어.

'재심'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야. 17년 전 벌어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인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이지.(#21세기에_이런일이)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구.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강도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어. 마침 다방에서 아르바이트일을 하던 15살 소년 최군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녀오다가 우연히 사건 현장을 지나치게 돼.

그리고 경찰에게 말했지.

"어떤 남자 둘이 뛰어가는 걸 봤어요"

어이 없는 사건 발생. 경찰이 최군을 용의자로 체포했어. 그리고 근처 모텔로 끌고 갔지.(#불법체포 #감금)

경찰은 최군에게 전화번호부 책을 주면서 범인을 찾아내라고 했어.


최군이 모른다고 하니까 구타가 계속됐고 이러다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 최군은 결국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거짓 진술서를 작성했어.

"택시기사 아저씨가 저를 때려서 화가 나 오토바이 밑에 있는 칼을 꺼내 택시기사 아저씨 어깨를 잡고 찔렀습니다."

사진=영화 '재심' 캡쳐


증거는 하나도 없었어. 최군이 갖고 있던 칼(#낚시용_칼)과 입고 있던 옷, 신발 등에서 피해자의 피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어.

실제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피를 워낙 많이 흘려서 차가 폐차되기까지 했다고 해. 그런데 최군한테서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지. 이상하잖아.

목격자들의 진술과도 달라. 목격자들은 싸우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고, 근처에 오토바이는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어.

말이 안 되는 건 이뿐만이 아니야. 최군이 오토바이를 타고 택시 옆에 가서 칼을 꺼내는 동안 택시기사가 가만히 있었겠냐고. 그리고 최군이 굳이 뒷좌석으로 들어가서 택시기사를 찌른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무엇보다 최군은 통화 중이었기 때문에 통화를 멈춘 시간은 1분 40초 정도에 불과했어. 범죄 전과도 없던 15세 소년이 2분도 안 되는 시간에 피해자와 말싸움을 하고 살해한 뒤, 근처에서 칼을 닦고, 옷과 신발을 갈아입고, 태연한 척 현장에 나타난다는 게?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멍멍)

어이없음의 끝판왕을 알려줄까? 최군의 오토바이에서 칼이 있었는데, 이게 낚시할 때 쓰는 작은 과도였거든? 당연히 피해자의 상처 부위와 맞을 리가 없지. 그런데 경찰들이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최군이 일하는 다방에서 식칼을 들고 왔어. 물증까지 조작한 거지. 그래 놓고선 며칠 뒤에는 칼을 못 찾았다는 조서를 남기기도 해.

참고로 낚시용 과도는 영화에선 좀 다르게 등장해. 최군(a.k.a 강하늘)의 썸녀(?)가 호신용으로 썼던 걸로 나오지.

#영화 속 장면1-자백

고구마 100개 먹게 될 사실 하나 알려줄까? 당시 최군을 수사했던 익산경찰서 형사들에게 전북경찰청이 '참 잘했어용~' 하면서 유공자 표창장을 수여했어. 상금 100만원도 함께. 여러분 이거 다 국민 세금인 거 아시죠??(#찍찍)

목격자 최군은 그렇게 살인범이 됐어. 최군은 재판에 넘겨지게 됐지. 최군은 경찰에게 구타당했다고 말하며 무죄를 주장했어. 그러나 판사는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며 오히려 최군을 질책했고, 당시 소년법 규정에 따른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했어. 최군의 (강압에 의한) 자백이 있었으니까 다른 과학적 증거들은 다 믿지 않은거야.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

/사진출처=이말년씨리즈 캡쳐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자백만으로 유죄 입증이 가능할까? 답부터 말하면 아니야. 대한민국헌법 제12조에 따르면 폭행으로 진술된 자백은 증거로 삼을 수 없고, 그래서 처벌할 수도 없어.

또 형사소송법 제309조와 제310조도 자백만으로는 유죄 입증이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어. 최군은 경찰의 폭력 수사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잖아. 다른 물적 증거도 없었고. '아마 그럴걸?'이라는 정황 증거뿐이었어. 재판=개판.

#영화 속 장면2-반성문

최군은 예전에 재판을 받던 도중 '반성문'과 다름 없는 편지를 쓰게 돼. '내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인데, 이것 때문에 감옥에서 살게 되는 날이 15년에서 10년으로 줄어들게 돼.

최군은 희망이 없었어. 당시 최군을 변호했던 공익법무관마저 최군에게 왜 거짓말하냐고 할 정도였으니. 무죄를 주장하기에는 넘나 멀리 와버린 최군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봐야겠지.

이 편지는 영화에서 극적으로 등장해. 재심을 맡은 변호사 준영(정우)이 재판을 준비하던 도중 현우(강하늘)가 썼던 편지들의 존재를 알게 되거든? 그리고는 의심을 하게 되지.

"너 진짜 사람 죽였는데, 지금까지 '피코' 한거임?"

하지만, 갈등은 풀리고 곧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사이는 더욱 각별해져. 편지는 두 사람 관계의 터닝포인트이면서 브로맨스의 출발이랄까? (훗)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봐.

실제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최군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보호와 사랑을 거의 받고 자라지 못했지.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아이를 국가는 보호해주지 않았어. 그 어린 소년은 어른들의 도움도 없이 경찰 조사를 받았고, 방어권도 행사하지 못했지. 이러한 문제는 법원에서도 전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어.

너희들은 대체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사진=인터넷 커뮤니티

그런데 웬열? 3년 뒤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어! 2003년 6월에 군산경찰서에서 새로운 범인이 체포된 거야. 용의자 김씨는 자신이 택시기사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어. 범행 목적과 방법까지 모든 걸 말했지. 진짜 살인범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까지 말이야! 최군은 교도소에 있는데!!

김씨의 자백은 택시기사가 살해된 상황과도 딱 맞아떨어졌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사체 부검 결과와도 일치했고. 또 김씨가 사용한 흉기를 목격한 사람의 증언도 많았어. 무엇보다 김씨를 숨겨줬던 친구 임씨의 자백이 컸지. 용의자와 용의자를 숨겨준 사람의 진술이 일치했으면 뭐 말 다한 거아냐? 사건 목격자들의 현장 증언과도 같았어.(#사이다_사러_편의점)

이제 슬슬 사이다 마실 수 있을 것도 같아.

그런데 말입니다.

사진=청정원 광고 영상 캡쳐


진짜 살인범을 잡으면 여러 사람이 난처해지지 않을까?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체포한 경찰과 검찰, 그리고 10년형을 선고한 판사까지. 그 사람들 아주 끝장나는거야. 옷 벗는 건 당연하고 여론의 질타까지 받겠지. 물론 처벌도 받아야 하고. 완전 끝판왕 스캔들이 되는 거야.(#지갑이_어디_있지)

아오~씐나!/사진= JTBC '마리와 나' 캡처


일단 군산경찰서는 김씨를 구속 수사하기로 마음먹었어. 그런데 사건을 맡은 검사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어. 자백 말고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지. 결국 김씨는 경찰서를 나오게 빠져나오게 돼.

경찰은 검사가 말한 증거인 흉기를 찾으려고 했어. 사실 3년이 지나서 막막하지만 그래도 억울한 사람이 생겨선 안 되잖아. 그래서 쓰레기매립장을 뒤져보겠다고 압수수색 검증영장까지 신청했는데 그 검사가 칼에 대한 특정이 부족하다며 다시 기각했어.(#지갑_놓고_옴)

아니 영장이고 뭐고 다 떠나서 말이 안 되잖아. 누구는 '증거 없는 자백'만으로 10년을 선고 받았는데, 누구는 '증거 없는 자백'으론 혐의 입증이 안 된다고 풀어주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김씨와 임씨의 태도가 돌변했어. 함께 범행을 부인하며 정신병원까지 입원하게 돼. 임씨는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하게 됐고, 사건을 맡은 경찰은 좌천되기까지 해. 사건은 다시 흐지부지됐지 뭐.

그렇게 검찰은 자신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은폐하려고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방치하는 일을 벌인거야. 진실은 사라졌어. 결국 최군은 7년을 더 감옥에서 보내게 됐고 10년 만기 복역하게 돼. 억울한 10년도 10년이지만, 그는 평생 '살인자'로 낙인 찍혀 살게 되는 거야. 잘못도 없는데. 이거 영화 아니고 100% 리얼 실화야.

최군, 아니 감옥에서 10년이나 보내 성인이 되었으니 이제 최씨라고 해야겠네. 최씨는 2013년 4월 재심을 청구했어.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씨의 도움을 받았지. 그들은 새로운 증거들을 제시했어. 무엇보다도 아까 언급했던 용의자들의 진술! 그리고 최군을 수사했던 새ㄲ...아니 경찰나으리들의 불법 감금과 강압수사도 언급했어.

사진= 영화 '재심'의 한 장면


2015년 6월이 되어서야 광주고등법원은 재심을 결정했어. 그런데 검찰의 방해가 또 등장해. 검찰이 재심을 하면 안 된다고 항고한거야. 검찰이 재심하지 말자는 이유를 5가지나 밝혔는데, 여기에 물증은 하나도 없었어. 심지어 최군이 자신의 잘못을 일관되게 인정했다고 했어.(#개뻥주의)

그런데 실제로 최군은 가족과 지인은 물론, 군산경찰서 형사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에게도 무죄를 주장했거든? 검찰은 이러한 사실관계도 무시한 거야. 한마디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던 셈이지.

거짓은 진실을 가릴 수 없지. 여기에는 국민적 관심도 한몫했어.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최씨의 억울한 사연도 공개되어서 재심에 대한 요구가 높았거든. 결국 2015년 12월 대법원은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고 재심을 결정했어.

2016년 11월 재심에서 최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어. 비록 최군이 자백은 했지만 택시기사를 살해할 이유도 없고 흉기도 어디서 난 건지 이상하다면서 자백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했어. 한마디로 허위 자백한 것 같다고 판단한거야. 무려 16년만이야.

빛나는 10대와 20대를 어둡고 차가운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 후에도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채 살아온 최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또 그 가족들은.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어.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됐어.

17일 오전 광주 법원 앞에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청구인 최모씨(32)가 무죄를 선고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노경필)는 이날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한 최씨가 청구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사진=뉴스1


영화 제작 당시만 해도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이었어. 영화가 2016년 7월에 촬영을 시작해서 10월에 마무리했거든? 그러니까 촬영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서야 재심 판결이 나온거야. 그래서 제목은 재심이지만 영화는 재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아직 판결이 나지도 않은 사건을 영화로 만드는 제작진들은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2015년부터 시행된 '태완이법'(☞기사참고)으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사라졌어. 그래서 이제 진범을 처벌할 수 있게 됐지.

최군의 사건은 용의자 김씨가 구속됐고, 지금 수사가 진행 중이야. 늦었지만 진실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어.

자, 이제 '약촌오거리 사건'이 뭔지 알겠지? 영화 '재심'이 이 사건을 어떻게 다뤘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영화를 보고 판단해봐!

이슈팀 서한길 기자 m_street9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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