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답을 알고 있다 에모토 마사루

2003. 7. 1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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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황홀한 사기극 대체의학을 전공한 에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양억관옮김・나무심는사람・2002)가 출간됐을 때, 언론은 이 책을 거의 소개하지 않았고학계의 반응 또한 냉담했다. 그러나 책 속에 실린 물 결정 사진들이 독자들의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큰 화제가 됐다. 두 달 전 저자가 한국에 온 적이 있는데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고, 독특하게도 일종의 종교 집회를연상시켰다.

몇 달 전 한 대학신문의 학생기자는 내게 “이런 사이비 과학 책이 인기를 끌고있는데 왜 과학자들은 침묵만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주변의과학자들에 물어보니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 걸 보면, 주류과학계의 침묵은 ‘냉담의 한 표현’인 것 같다.

인터넷서점 독자서평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엉터리 사진들과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 찬과학책’이라는 혹평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에세이’라는평이다. 이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이 책을 과학책이 아니라 ‘물의 생명력을깨닫게 해준 사진 에세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인간의 언어에 반응하는 물? 과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우선 책에등장하는 물 결정사진들이 믿을만한 데이터인지 의심스럽다. 저자 에모토는 샬레에물을 떨어뜨려 영하 20도의 냉장고에 3시간쯤 넣어둔 뒤 결정구조를 관찰했다.

그는 클래식음악이나 ‘사랑, 감사’라는 단어를 보여준 물은 결정 구조가아름답고, ‘망할 놈’이란 단어나 헤비메탈 같은 음악을 들려준 물의 결정은흉측하더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비물질적인 것이 물질 구조를 변화시킨다’는주장으로, 에너지 보존법칙 등 기존 과학을 송두리째 뒤엎는 주장이다.

실험결과에 대한 해석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에모토는 물 입자가 사랑과감사를 느낄 수 있는 의식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고맙습니다’라는 단어는감사의 주파수를 물에게 보내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고, ‘망할 놈’이라는 단어는비난의 주파수를 내보내 결정구조를 깨뜨린다는 것이다.

물질마다 고유의 진동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이에 쓴 글씨가단어의 의미에 따라 서로 다른 주파수를 낸다는 주장은 실소를 자아낸다. 물이세계 각국의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의식이 있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려면그 근거를 대야 할 것이다.

어는 점 이하에서 물 입자들이 조건에 따라 어떻게 다양한 결정구조를 만드는지는고체물리학자나 화학자들의 오랜 연구주제였으니 새로울 것도 없다. <네이처>의물리화학 분야 편집자였던 필립 볼이 쓴 <H2O: 물에 관한 전기>(양문・2003)에는에모토의 주장을 포함해 물에 관한 온갖 사이비과학의 허구성이 잘 소개돼 있으니저자 에모토가 참고해야 할 책이다.

‘사랑과 감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 책의 메시지는 좋다. 그러나 그것을뒷받침하고 있는 근거가 조작된 것이고 해석 또한 엉터리라면, 그것은 굉장히위험한 일이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저자는 각국의 신과학 지지모임에만 참석하지 말고 이 책을 저명한 과학저널에 제출해 심사 받기를 권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 책은 올해 나온 2편과 함께 최악의 ‘과학’도서가 될것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정재승ⓒ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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